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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①] 부재의 고통으로 만나 ‘다시는’으로 모이다

기사승인 2020.08.0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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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 명숙 상임활동가

가족의 달이라는 5월, 누군가는 가족의 생존과 온기를 확인하는 기념일이 누군가에게는 부재를 확인해야 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같이 지내니 좋네요. 어버이날이 항상 힘들었는데.”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우리 다음에도 어버이날은 같이 보내요.”

어버이날이 힘들었다는 강석경씨가 웃으며 운을 떼자, 김미숙씨가 맞장구를 친다. 두 사람의 자녀 모두 일하다 죽었다. 2014년 현장실습생으로 CJ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강씨의 아들 고 김동준님은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통을 당하다 목숨을 잃었다. 김씨의 아들 고 김용균님은 2018년 12월11일 새벽 혼자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 모두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다시는)의 회원이다.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5월6일 ‘다시는’이 정례 모임을 겸해 한적한 시골로 모꼬지를 왔다. 모임 장소는 또 다른 ‘다시는’의 성원인 이용관씨의 시골집이다. 이씨의 아들 고 이한빛님도 방송비정규직 문제를 괴로워하다 이를 고발하고 목숨을 잃었다. 정기모임에는 LG유플러스 외주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 홍수연님의 아버지 홍순성씨와 지난해 4월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3일 만에 생을 마감한 고 김태규님의 어머니 신현숙씨, 누나 김도현씨도 참여했다.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정겨운 시골동네를 한 바퀴 돌며 풍경을 즐기면서 웃다가도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저마다 눈빛이 촉촉해진다.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맛난 것도 먹고 수다를 떨며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산업재해 사건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 표정이 굳어지곤 했다. 모두들 5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버이날이면 꽃을 달아 주거나 같이 밥을 먹던 순간이 떠올라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버이날은 꼭꼭 숨듯이 집에 있기도 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한다고.

그래서 5월 모임을 ‘다시는’ 가족들이 같이 보내기로 했고, ‘다시는’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카네이션을 대신 선물했다. 같은 고통을 겪고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다른 산재 피해 가족들과 같이 보내니 마음이 조금은 덜 쓸쓸하다고 했다. 말 안 해도 알아주는 사람들, 구체적으로 말해도 완충벽이 있는 양 알아듣는 사람들….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던 이들이 이제는 산재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후 하나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다시는’의 시작

‘다시는’으로 연을 맺게 된 직접적 계기는 ‘김용균 투쟁’ 때다.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죽은 스물네 살 발전 비정규직 김용균님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21세기에도 비정규직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안전하지 않게 일하고 있다니! 그것도 비정규직 제로를 선포한 정권에서 일어났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를 보여줬다. 남은 유가족이 싸워야만 산재사건이 인정되는 현실에 사람들은 분노 어린 한탄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산재사망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김용균 투쟁에 힘을 모으기 위해 모였다. 2018년 12월20일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과 현장실습생 유가족, 원진산업재해피해자 가족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했고, 지난해 1월17일에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과 함께 모여 청와대의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훗날 김미숙씨는 “우리한텐 모든 것이었던 자식이 죽었는데…. 만나면 손을 잡아 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유가족들이 있어 조금은 마음이 안심이 됐다”고 했다.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으며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라는 작은 성과를 이루고 진상규명에 대한 합의를 받고 장례를 치렀다.

장례 이후에도 산재유가족들은 종종 안부를 묻곤 했다. 비슷한 산재가 발생하면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이 돼서 서로를 불렀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야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피해가족들이 앞서서 국민에게 말하고 정치권에 얘기한다면, 기업이 돈만 생각하며 노동자의 안전을 저버리는 일은 줄지 않겠냐고…. 적어도 노동자들을 죽이는 기업은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는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국에 흩어진 가족들이 움직이려면 교통비도 필요했다. 마침 2019년 5월 아름다운재단이 기금을 지원하는 기간이었다. 기금신청을 위해서는 모임 이름이 필요했다.

“다시는 우리와 같이 산재로 가족을 잃어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한다는 의미로 ‘다시는’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모두들 좋다고 했다. ‘다시는’은 피해가족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친목만이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법·제도를 만들기 위해 활동한다. 산재피해가족 외에도 이들의 활동에 동의하는 활동가들도 함께하는 노동자건강권운동을 하는 모임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악에 맞서

가족들의 첫 공동행동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악을 막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뒤로 돌리는 시행령 개악안을 내놓았다. 4월 입법예고한 시행령에는 김용균님이 일한 발전소는 도급승인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굴삭기·이동식크레인 등 사망사고가 빈번한 건설기계 사고에서 원청의 책임을 면제한 내용이 포함됐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아무 소용 없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유가족인 김미숙·황상기·이용관 등 가족들은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이용관씨는 편지에서 “우리 아이들과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만든 산업안전보건법이 이렇게 훼손되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원청기업에 책임을 묻는 조항이 빠지고, 방송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영역이 법의 적용에서 제외됐다. 구체적인 제재나 규제 방안이 실종돼 산업안전보건법은 개정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유명무실한 법이 되고 말았다”며 대통령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시는 가족들은 편지만이 아니라 1인 시위도 6월 한 달간 이어 갔다. 김미숙씨는 ‘다시는’에 함께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조적인 문제로 죽었는데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눈감아 버리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어요.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으면 계속 이런 죽음과 사고가 발생할 테니까 우리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명숙 상임활동가

‘다시는’ 가족들은 산재 사망사건이 생기면 달려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산재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하라는 데 목소리를 보탠다. 그 외에도 노조와 단체, 학생들이 ‘다시는’과의 간담회를 요청하면 달려가 노동자의 안전을 가로막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강석경씨는 충청도에서 멀리 서울과 지방으로 간담회나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이유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직이 덧붙인다. “우리의 이런 행보로 산재사고, 산재사망이 나와는 관련없는 다른 누군가의 일이 아님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오늘도 ‘다시는’ 가족들은 부재의 고통을 끌어안으며 생명의 이야기를 이어 간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saltomor@gmail.com)

명숙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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