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변화의 조짐을 본다.

비록 필자의 길지 않은 노동안전보건 관련 활동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지난 시기에 비해 최근 흐름은 고무적이다. 사회면 사건사고란 단신으로 처리되던 산재 ‘건’은 이제 통계와 그래픽을 갖추고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1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의 불안전 행동을 중심으로 기계적이고 기술적으로 작성되던 재해조사보고서는 드물게나마 위험의 구조, 고용·산업의 구조를 들여다보며 분석한 것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집회 구호나 유인물이 아닌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이야기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부지하세월이던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합의문에 등장하고 유력 정치인들의 축사와 함께 열린 국회토론회 주제로 등장한다. 검찰 관계자가 위험의 외주화 구조를 언급하고 김용균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를 기소했다.

언강생심, 작업장 안전을 도모하는 보편적 권리가 생명을 위협하는 급박한 위험 앞에서 최후의 보루라도 되길 희망했다. 그런데 안전보건 종사자들에게도 낯설기만 했던 작업중지권을, 폭염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행사하도록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하고 있다.

산업재해가 개발·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안타까운 죽음과 손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보편적인 생명·안전 권리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위험의 구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손상과 죽음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식의 지평은 넓혀져야 한다. 노동자의 위험과 안전이 다수 시민의 위험과 안전으로 연결된다는 인식 확장은, 다치거나 죽어 가는 노동자가 바로 시민이기도 하다는 인식과 똑같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죽고 다치는데 왜 사장님들은 멀쩡히 돈을 벌고 있는가. 억울함과 괘씸함을 넘어서서 책임과 처벌의 범주를 사회상규와 법제도에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전보건에 전문성과 뚝심을 가진 ‘가오’ 있는 근로감독관이 당최 보이지 않음을 성토하는 것만큼이나, 왜 그런 근로감독관이 길러지지 않는지 행정체계와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하다.

예견되는 위험 앞에서도 이윤을 앞세워 작업을 강행하는 몰염치를 성토하면서도 기계와 물류를 멈춰 세우고 반드시 챙겨야 하는 안전,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어떻게 제도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이제 그렇게 조금씩 진전해가고 있으며 더 나가야 한다.

바야흐로 노동안전보건의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언론이, 전문가가, 정치가가 말하고 있다. 한국 사회 생명·안전에 대한 인식 체계, 노동안전보건 체계와 구조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구조를 바꾸는 것에도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수임하고 노동자의 관점에서 주도해야 하는 구조는 노조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15년 만에 노조 조직률이 11%를 넘었다.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가 233만명이이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과 교육은 늘상 노동안전보건을 주제로 하거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 성황을 이룬다. 당위만이 아니라 실제적 수요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제대로 된 안전보건행정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한 ‘법’이 만들어지고 ‘청’이 만들어진다 한들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노조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답해 주기를 기대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데 있어서 노동자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조활동이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이제 노동자·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작동하는 법·행정체계로의 진전을 주장하고 관철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구조, 구조를 바꾸는 구조로서 노조의 역할을 고민해 주기를 기대한다. 산재를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안전보건 문제로, 개별 노조 혹은 노동안전보건실이나 산업안전보건연구소만이 아닌 총연맹 차원의 전략적 과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를 원하시나요? 노조하세요.”도 좋다. “건강하게 일하고 싶으신가요? 노조하세요.”는 또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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