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연일 계속되는 폭우에 맑은 하늘을 잠시나마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집 앞 도림천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재난 피해 경고 사이렌이 울리고,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출입구가 통제된 지 며칠째다.

사이렌 소리에 눈을 뜬 아침, 두 개의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트 모양의 인공수초섬, 그리고 폭우 속 서울역 맞은편 대형빌딩.

#. 지난 6일 춘천 의암댐 인공수초섬 고정작업을 하던 선박이 전복돼 작업을 하던 8명 중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다. 8일 실종자 중 2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댐의 14개 수문 중 9개가 열려 있었는데, 인공수초섬을 고정시키기 위해 작업을 나섰다가 발생한 참변이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고 하천 출입이 통제되던 시간에, 인공수초섬을 고정시키기 위해 나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춘천시는 그런 작업을 지시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아무 지시가 없었는데 경찰과 공무원, 민간업체 소속 노동자 8명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거세지는 물살을 헤치고 작업에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설령 명시적인 지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인공수초섬을 고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수문이 열리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작업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의암댐에서 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5일 오전, 서울역 맞은편 지상 23층 빌딩에서는 빗속에서 5명의 노동자가 위태롭게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건물 외벽 청소를 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비바람이 언제 거세질지,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는 날씨 속에서 예정된 외벽 청소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강행한 것이다. 건물 시설관리 담당자는 위험하니 작업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업체측에서 그대로 실행했다는 입장이었다. 사람 한 명이 몸을 겨우 기댈 수 있는 받침대와 로프에만 의지해 23층 높이 공중에서 청소를 해야 하는 작업을,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되는 날씨 속에서 예정된 일정이라는 이유로 강행해야만 했던 것일까.

무엇이든 비용으로 쉽게 환산된다. 하루 작업을 미루면 손해가 얼마인지, 들인 예산이 얼마인지, 망가질 경우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지. 무엇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강조되는 만큼 비용으로 책정되지 않은 많은 것들은 가려지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당한다.

누구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 따지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어떤 법률, 어떤 지침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할 터다. 그러나 그 이전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생명과 삶이, 안전이 희생을 강요당하고 가벼이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였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안전과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관련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뒀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정된 청소 일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바람 속에서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면 건물 시설관리인이든 청소업체든 누구든 먼저 일정을 조정해서 다시 작업을 하자고 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지시를,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너무 위험하니 일을 멈추자, 하지 말자, 먼저 손을 내밀고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것은 공허하고 헛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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