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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에 위협받는 노동자 안전] 택배노동자에게 작업중지는 먼 나라 얘기

기사승인 2020.08.1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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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계 “작업중지권 보장 … 불가피한 손해 발생은 면책해야”

   
▲ 지난 8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CJ대한통운 첨단서브터미널 인근에 택배 차량이 폭우에 침수된 모습. <택배연대노조>
지난 6일 강원도 춘천 의암호에 떠 있던 인공수초섬 고박작업을 하러 나갔던 노동자 8명 중 7명이 선박이 전복되면서 실종되거나 숨진 채 발견됐다. 의암댐 상류에 위치한 춘천댐과 소양강댐 방류로 유속이 거세 사고위험이 컸지만 기간제 노동자를 비롯한 작업자들은 작업을 강행했다. 10일 사망한 채 발견된 이아무개 춘천시청 주무관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이 주무관 자동차 블랙박스에는 “휴가 중인데 일하러 간다” “미치겠네, 미치겠어” “나 또 집에 가겠네. 혼자만 징계 먹고” 같은 목소리가 녹음돼 있다.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현장에 나갔다는 방증이다. 8명의 노동자에게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국지성 호우로 인명 피해와 침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빗길 운행을 감행해야 하는 택배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처지다.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건당 수수료를 받는 이들은 CJ대한통운이나 롯데택배 같은 대기업 택배회사가 아닌 대리점(집배점)과 업무 위탁계약을 맺는다. 대리점은 화주에게 받은 물건 배송을 중단하거나, 손상된 물건에 대한 책임을 질 권한과 여력이 없다.

“업무 거부는 잘릴 각오 있어야”

“비가 많이 오는데 배송을 나가야 하나 고민이 되죠.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데 기다렸다가 나갈 수도 없고. 물건은 계속 하차되니까요. 개인사업자니 일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대리점은 계약해지를 들먹이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죠. 도로가 침수돼 가족이 걱정되는 상황인데, 집에도 못 가고….”

전북에서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있는 공공운수노조 택배지부 조합원 김명수(45·가명)씨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회사는 택배기사를 개인사업자라고 하지만, 폭우가 내려도 일을 중단하기 쉽지 않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리점장이 계약해지를 해도 고용노동부에 호소할 수 있는 신분도 아니다.

비로 물건이 파손돼도 택배노동자들이 떠안는 경우가 다반사다. 로젠택배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염성철 전국택배노조 로젠울주지회장은 “기사들은 몸은 다 젖어도 혹시나 박스가 젖어 고객과 마찰을 빚거나 물어 줘야 할까 봐 안고 다닌다”며 “그런데도 파손되면 배송기사나 집하기사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리점은 빨리 하차작업을 끝내야 자기 손에서 물건이 떠나는 것이니 비가 많이 와도 하차를 시키려고 한다”며 “하차 이후 물건에 문제가 생기면 기사들 책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전남지역에는 지난 7~8일 600밀리리터에 달하는 집중호우가 내렸다. 광주시에 위치한 CJ대한통운 첨단터미널의 경우 도로가 유실돼 택배차량 진입이 불가능했고, 배송이 중단됐다. 그런데 롯데택배 노동자는 같은날 정상 배달업무를 수행했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도 원청이나 대리점측에 업무 중지와 관련한 별도 지시를 받지는 못했다. 경찰이 도로를 통제하는 바람에 해당 터미널 3개 입구 모두가 막히면서 강제 업무 중지를 당했다고 한다.

CJ대한통운은 “회사는 자연재해와 관련해 사전에 안전수칙과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있으며 현장의 안전을 위한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며 “자연재해 발생시에는 대체 터미널을 활용한 상하차 업무 등을 진행해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휴무, 지연배송 등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업중지권 보장해야”

그런데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에서 통용되는 계약서를 보면 작업중지권 또는, 천재지변시 배송기사의 면책특권에 관한 내용이 없다. 택배화물 집배송 위탁 계약서 7조(손해배상)에 “수탁자(택배기사)는 위탁업무 수행과정에서 발생하는 화물사고(멸실·훼손·미배송·오배송 등)에 대해 상관례 및 관련 법규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돼 있을 뿐이다.

박성기 공공운수노조 택배지부장은 “비가 많이 오니 배송을 중단하라는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유성욱 택배연대노조 사무처장은 “특별 재난 상황에서 회사가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대리점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역량도 안 되고 권한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우편물 이용제한 및 우편업무 일부 정지에 관한 고시는 참고할 만하다. 고시 5조(집배업무 정지 및 해제)에 따르면 “총괄우체국장 등은 자연·사회재난 및 이에 준하는 경우 다음 각 호(폭설·폭우·태풍 등 자연재난, 황사·폭염·미세먼지 등 자연·사회재난)와 같이 집배업무를 정지·해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조3항은 집배원이 총괄우체국장 등의 집배업무 정지 결정과 별개로 우편물 배달 등이 곤란하거나 대피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업무를 정지하거나 긴급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

허소연 집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해당 고시가 현장에서 잘 적용되려면 배달을 중지할 때 집배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각 우편물마다 송달기준을 명시해 두고 있어, 집배원들은 해당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 52조1항에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로 원청이 사실상 권한을 쥔 택배업계, 그리고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에게 이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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