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남부지법 2020. 7. 17. 선고 2020카합20258 결정


1. 사건의 경과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의 장소적 배경인 OO빌딩(이하 ‘이 사건 빌딩’)에 관해 그 소유자는 주식회사 A이고, 채권자인 주식회사 B(이하 ‘채권자’)는 A로부터 그 관리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용역업체이고, 주식회사 C는 채권자로부터 다시 그 관리업무 중 청소 등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용역업체다. 한편 채권자는 A가 그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이고, C는 A의 대표이사인 D의 고모 2명이 각 50%의 지분을 가진 회사로 A 소유의 다른 빌딩에 본사를 두고 A 계열사의 용역업무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사건 빌딩에서 청소업무를 수행하는 C 소속 청소근로자들은 산업별 노동조합인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이하 ‘채무자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C를 상대로 임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으나, C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2020년 4월16일부터 쟁의행위에 돌입해 매일 점심시간 30분 및 저녁시간 30분 동안 이 사건 빌딩 1층 로비에서 피케팅과 구호 제창 등의 방법으로 근로계약상 사용자인 C, 원청인 채권자, 원청의 원청(또는 모회사)인 A에 대해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에 채권자는 위 청소근로자들과 채무자 노동조합, 그리고 채무자 노동조합 산하 OO분회(이하 ‘채무자 분회’)가 임단협 교섭의 상대방인 C의 본사 소재지도 아니고 심지어 원청인 채권자의 본사 소재지도 아닌 제3자 A가 소유하는 이 사건 빌딩에서 “A가 사용자다” “D가 책임져라” 등 허위의 주장을 하며 집회를 벌임으로써 그들 자신과 아무런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A 및 이 사건 빌딩 입주사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며 그러한 집회의 금지 및 채무자 노동조합 간부들의 출입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2. 대상결정의 판단

대상결정은 우선, 채무자 분회의 경우 독자적인 규약과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서 활동하거나 그 조직이나 조합원에 고유한 사항에 대해 독자적인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능력을 가지지 않아 당사자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 신청 부분을 각하했다.

그리고 대상결정은 ① A가 채권자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소위 A가(家) 사람들”이 C의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는 점(결정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재판부는 C가 채권자와 사이에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A의 정도경영을 실천하겠다고 서약했던 점에도 주목했다) ② C의 사무소가 소재하는 건물도 C의 소유가 아닌 점 ③ 이 사건 빌딩은 채무자 조합원들이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인 점 ④ C가 수행하는 업무는 채권자가 A로부터 위탁받은 이 사건 빌딩의 관리업무에 포함되므로 채무자들과 C 사이의 노사관계는 채권자와 A에게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점을 근거로 삼아 채권자와 A도 채무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일정한 수인의무가 있다고 판단했고, 나아가 ⑤ 채무자들은 업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 중 30분과 퇴근시간 전 30분 동안에만 자신들의 근무장소인 이 사건 빌딩 1층 로비에서 쟁의행위를 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다른 입주사 직원들의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⑥ 채무자 노동조합이 근래 이 사건 빌딩 로비에서의 선전전을 중단한 점을 근거로 삼아 채무자들이 채권자와 A에 부여된 수인의무의 한계를 일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의 나머지 부분을 기각했다.

3. 대상결정의 의의와 과제

최근 들어 각급 법원은 용역업체 소속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원청 사업장 내 조합활동 및 쟁의행위에 대해 원청의 수인의무를 점차 넓게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경우 근로제공의 장소가 원청 사업장이고, 용역업체가 교체되더라도 장기간 계속해서 고용이 승계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고, 원청이 그러한 근로제공의 결과를 향유하고 있고, 원청은 용역업체와 사이에 체결한 용역계약을 통해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만약 원청의 수인의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쟁의행위는 모두 업무방해죄로 의율되거나 불법행위로 취급돼 그 근로 3권 행사가 원천봉쇄될 것인바, 원청의 수인의무를 인정하고 그 범위를 조금씩이나마 확대해 가고 있는 법원의 태도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대상결정 또한 ①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원청의 원청(또는 모회사)의’ 수인의무를 인정함으로써 재하도급 또는 자회사를 이용한 이중 삼중의 간접고용에 관해서도 그 최종적인 근로조건 등 결정권자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② 무엇보다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원청 및 원청의 원청에 ‘대한’ 쟁의행위까지도 수인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판례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측면이 있다.

다만 그 결정문에서는 A, 채권자, C 사이의 지분관계 등을 근거로 해 “채무자들과 C 사이의 노사관계는 채권자와 A에게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막연히 설시할 뿐, 원청 및 원청의 원청(또는 모회사)에 ‘대한’ 쟁의행위가 어찌하여 정당한 쟁의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 근거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이미 10년 전에 원청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시했는데(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그 판결의 취지에 대해 다소의 갑론을박이 있기는 했지만 최근 서울서부지법이 이른바 홍익대 업무방해 사건에서 위 2007두8881 판결에 관해 원청도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하고 그 서울서부지법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됨으로써, 위 2007두8881 판결이 설시했던 원청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이 다만 부당노동행위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 3권 관계 전반에 두루 적용된다는 점이 명확해졌다(서울서부지법 2019. 11. 21. 선고 2019노778 판결,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도18524 판결).

그러하다면 하급심 법원도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원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함으로써(즉 원청이 실질적인 근로조건 결정권한을 가지는 경우라면 그 간접고용 근로자들에게 원청에 대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체결을 요구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근로 3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인데, 아직까지는 근로자들의 편에 선 판결들조차 그저 해당 사건에서의 원청이 노조법 38조의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모호한 논리에 기반해 그 수인의무를 인정하고 있을 뿐, 노조법상 사용자이므로 교섭의무 및 단체협약체결의무를 진다고 명시하는 판결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원청도 사용자가 될 수 있기는 하되, 그 문은 바늘구멍보다 좁은 것이다.

결국 대상결정은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원청(및 원청의 원청)에 ‘대한’ 쟁의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이미 원청의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것이나, 문언상으로는 여전히 다른 판례나 결정례들과 같이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정면돌파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대상결정의 중요한 의의가 빛을 잃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더욱 용감한 판결 또는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그 기대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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