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건설기계가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근태를 관리하는 등 위장도급 의혹이 짙은 정황이 드러났다. 서진이엔지는 지난달 단체교섭 도중 이달 24일부로 폐업과 전 직원 60여명 해고를 통보해 논란이 된 곳이다.<7월29일자 3면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 서진이엔지 위장폐업 논란’ 참조>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정황이 드러난 만큼 원청이 고용승계를 책임져야 한다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원청 작성 작업표준서·계획서로 업무지시
카카오톡 실적보고 받고 근태관리 정황 포착


23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는 사내하청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에게 원청이 제공한 작업표준서·작업제작계획서에 따라 업무를 지시하고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일일 실적 보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는 파견근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대건설기계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지휘·감독하면 불법파견이 된다. 현대건설기계가 고용승계를 책임지고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건설기계는 2017년 4월 현대중공업의 건설장비 사업부가 인적분할돼 설립된 신설회사로 1천2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업체는 총 4곳이 있는데 단기계약업체를 제외하고 도장·물류·용접을 담당하는 3곳(현주기업·인우테크·서진이엔지)으로 나뉜다. 서진이엔지는 굴착기의 붐과 암, 휠로더의 리어 등을 주로 제작하는 업체로 용접작업을 담당했다. 해당 공정은 가용접-선행 용접-마무리 순으로 진행된다. 지회를 통해 입수한 ‘2020년 6월 중형굴삭기 암 제작계획서’를 보면 직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가 혼재된 라인공정에서 공동작업을 수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용접과 선행 용접은 직영 또는 하청 노동자가, 마무리 공정은 하청 노동자가 맡는 식이다.

업무실적을 직영 관리자에게 직접 보고한 정황도 드러났다. 직영 관리자 5명과 서진이엔지 노동자 3명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을 보면 관리자는 “매일 오후 3시에 생산현황을 공유해 달라”고 지시했다. 하청 노동자는 작업모델, 수량과 진행상황 등 업무실적을 매일 보고했다.

직영 관리자가 하청 노동자 근태관리에 개입한 정황도 확인됐다. 직영 관리자가 작성한 야간 일일 안전일지에는 서진이엔지 근무인원을 체크하고, 월차·지각 등 근태를 파악해 관리하고 있었다. 원청이 하청 작업자의 직무교육을 관리한 자료도 확인됐는데, 서진이엔지 뿐만 아니라 다른 하청업체 소속 작업자도 포함돼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서진이엔지 노동자의 시업·종업 시간, 휴게시간 부여, 연장 및 야간작업, 교대제 운영 여부와 작업주기까지 원청이 결정했다”며 “노동시간 편성과 작업배치·변경권도 원청이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지회에 따르면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직영 노동자와 달리 상여금이나 수당 없이 시급제로 일한다. 5년차까지 최저시급을 받고 이후에도 큰 폭의 임금인상 없이 만성적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지회 관계자는 “직영 노동자와 같은 라인에서 동일한 체계로 일을 하고 있지만 임금은 50%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상 상당한 지휘·명령”
사측 “불법파견 사실 없어”


고용노동부는 현대건설기계의 파견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지회가 18일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내자 울산지청은 현장조사와 서진이엔지 대표 면담을 20일과 21일에 각각 진행했다. 울산지청 관계자는 “진정인 조사를 진행한 뒤 원청 면담과 필요시 2차 현장조사도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기계 사측 관계자는 “불법파견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현대건설기계는 21일 사보를 통해 “사내협력사 문제로 생산이 어려움에 처했다”며 “생산중단 위기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부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플랜트부문 정규직을 대상으로 서진이엔지 공정에서 일할 인력을 모집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현대중공업 차원에서 인소싱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기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라인공정에 따라 정해진 업무를 반복해서 수행한 업무 특성상 현대건설기계가 만든 작업표준서에 따라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업무를 수행한 점은 업무상 상당한 지휘·명령을 한 증거가 된다”며 “라인 혼재, 작업표준서 제공, 근태관리 3가지 정황을 종합했을 때 불법파견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21일 오전 무기한 파업을 선언하고 이날 저녁부터 사업장 내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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