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8일 광화문 대규모 집회 뒤 광화문 인근 지하철 역사 내 개찰구 등을 특별방역했다.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 서울지하철 1호선에서 일하는 역무원 김아무개(33)씨는 지난 21일 출근을 앞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야간 근무조인 그는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9시10분까지 일한다. 지하철 이용객이 많은 ‘불금’엔 만취로 인한 민원이 몰려 힘든 근무로 꼽힌다. 최근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위험성이 더 커졌다. 김씨는 “업무 특성상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일이 잦고,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턱에 걸친 민원인이 많아 두렵다”며 “방법이라고는 오직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잘 쓰는 방법밖에 없어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1차 팬데믹 비껴갔던 지하철
확진자 늘면서 대면업무 불안감 증폭


최근 시민의 발 지하철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6월30일 열차를 관리하는 서울메트로 신정차량사업소 관리소장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 21일에는 2호선 서울대입구역의 역장과 청소 노동자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주말에는 9호선 종합운동장역 지하철보안관이 확진자로 판정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2호선 역무실을 폐쇄하는 등 확산 방지에 나섰으나 불안감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하철은 1차 팬데믹의 위협을 비껴간 대표적 사업장이다. 서울지하철 노사는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철저한 방역조치에 들어갔다. 역무원을 비롯한 청소 노동자와 지하철보안관 등 역사 내 모든 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손소독제도 곳곳에 비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월부터 지하철 역사 내부 방역도 주 2회로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2차 팬데믹은 피하지 못했다. 아직 집단감염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나 대면업무가 잦은 특성상 두려움은 커졌다. 김씨는 “교통카드 충전이나 회수를 비롯해 지하철을 잘못 탔다는 소소한 민원도 역무원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열차 내 난동은 더욱 위협적이다. 특히 밤시간대에 발생하는 민원은 만취자인 경우가 많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 김씨는 “열차 내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면서 위협을 가할 때 역무원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최선을 다해 끌어내는 것뿐”이라며 “방역이라고는 별일 없기를 바라며 손을 씻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민원인이 직접 역무실을 찾는 경우도 많다.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역사는 역무실 내 가림막을 설치해 통행을 차단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김씨는 “가림막 너머에서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아 결국 직접 마주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지은 지 오래된 역사는 구조적으로 가림막 설치가 어렵다.

노조는 대면업무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노조 1호선지회는 21일 공사쪽에 △역무실 폐쇄 혹은 대면 업무 중지 △공사현장 작업 중단 △기저질환 노동자 조사 및 보호대책 마련 △역사 내 냉방 및 환기 24시간 가동 △전문 방역업체 통한 역사 방역 △격리대상·확진자 발생 시 대체인력 확보 △역사 내 격리공간 확보 등을 요구했다.

한 차례 홍역 치른 콜센터·물류업
하도급·비정규 인력구조로 여전히 위험지대


1차 팬데믹으로 홍역을 치른 산업은 2차 팬데믹에 대한 대비가 돼 있을까. 현장 노동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콜센터가 대표적이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 산업계와 정부는 서둘러 콜센터 코로나19 예방 지침을 마련했다. 밀집한 노동환경이 가장 큰 문제였던 만큼 콜센터 노동자가 지그재그로 부스에 앉아 일할 수 있도록 하고, 맞은편 부스 사이에 가림막을 높게 설치했다.

그러나 이런 지침 적용은 사업장마다 천차만별이다. 하도급 계약을 맺는 콜센터 산업 특성상 업체가 바뀔 때마다 방역환경도 바뀐다. 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은 “한 센터의 경우 앞서 CJ텔레닉스가 위탁사업을 할 때는 하루에 하나씩 마스크를 지급했다가 도급업체가 바뀌면서 일주일에 하나씩 지급한다”고 털어놨다.

반면 노동강도는 더 강화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재택근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정부지침이지만 근무 인원이 갑자기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 사업장은 질병관리본부의 전화상담도 한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 상담건수가 늘어난다.

원·하청업체는 이런 노동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노조는 지난달 원·하청업체에 코로나19 예방과 휴게권 보장을 요구한 공문을 보냈으나 하청업체는 ‘추후 적용’ 혹은 ‘코로나와 무관’ 등을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원청인 공단은 회신도 하지 않았다.

정부쪽도 이 같은 사업장 상황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지난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담감염 뒤 위험시설에 대한 코로나19 대응 지침 등을 마련하고 실사까지 진행했지만, 정작 회사쪽이 이를 시행하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가림막을 설치하지 않아도 시정 명령 이후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어 답답하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코로나19 집단감염과 과로사 등 코로나19와 관련한 문제를 모두 겪은 쿠팡은 징벌적인 관리체제를 수립해 대응했다. 배송 중에 매시간 소독과 손 세척, 마스크 착용 여부를 확인하는 알림창이 뜬다.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장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배송하다 고객이 민원을 제기하면 최대 정직까지 당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배송캠프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한 번 캠프 전체 소독을 한다. 출입시 신분증과 QR코드를 스캔하고 입실해야 한다. 마스크와 장갑이 없으면 캠프 출입이 불가능하고, 캠프 내에서 마스크를 벗거나 장갑이 없으면 바로 징계를 받는다.

그런데도 2차 팬데믹을 피하지 못했다. 쿠팡 일산1배송캠프와 인천2배송캠프 등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배송캠프는 분류작업과 쿠팡맨·쿠팡 플렉서가 물건을 차에 싣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정규직 중심의 방역망을 갖췄으나 업무 특성상 비정규 노동자가 많아 인원을 모두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일 주문량에 따라 필요한 노동력을 고용하는 유연한 산업구조가 코로나19 방역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일산1배송캠프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일용직 노동자인 쿠팡 플렉서다.

쿠팡 물류창고인 쿠팡물류센터 역시 일용직 중심으로 업무가 운영된다. 불특정 다수가 밀폐된 공간인 물류센터 내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 강호진(가명)씨는 “물류센터 내에서 거리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작업장과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 모든 공간에 인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부천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 당시 문제로 지적된 2인1조 포장 업무는 최근 다시 시작됐다고 한다. 직접 포장을 하는 노동자와 포장할 물건을 건네주는 노동자다. 가까이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접촉이 불가피하다.

확진자 있는 병원 누비는 청소노동자
“코로나19 관련 정보 통제돼” 두려움 호소


이처럼 코로나19는 사업장 내 고용형태에 따른 방역수준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코로나19 치료와 예방의 최전선인 병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정부가 의료기관의 코로나19 대응 지침을 발표하면서 고삐를 쥐고 있지만 병원의 시설·환경 관리를 담당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코로나19 환자 관련한 정보가 일체 제공되지 않고 있다.

강북 한 대학병원 청소노동자 안아무개씨는 “누가 코로나19 환자인지 모른 채 온갖 병실을 청소하고 있다”며 “청소업무에 쓸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두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은 선별진료소를 5곳이나 설치하고 입원병동도 대규모로 운영한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 감염관리를 하고, 확진자 동선에 따라 방역을 한다. 그러나 병원 곳곳을 누비는 청소노동자들은 이런 관리와 정보에서 배제돼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선별진료소 인근에 위치해 있을 정도다. 게다가 휴게실과 벽 한 칸을 맞댄 곳은 선별진료소 담당 의료인력의 보호장구 착의실이 있다.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보호장구 착의실 이용도 빈번해져 청소노동자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기본 방역물품 제공도 허술하다. 안씨는 “주당 마스크 1개만 지급받고 있다”며 “청소 보호장구도 달리 없고 일회용 위생장갑만 준다”고 전했다.

이 병원 시설관리 노동자는 방역업무까지 떠안았다.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가 병실로 이동하면, 그 뒤를 따르며 방역을 하는 업무다. 이 병원 시설관리 노동자 허아무개씨는 “본래 병원쪽에서는 다른 전문업체를 쓰도록 했는데 하청업체가 직접 하겠다며 나섰다고 들었다”며 “원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피로감이 크지만 안하면 일을 관둬야 해 억지로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1차 팬데믹 영향 분석 소홀, 정부 직무유기”

코로나19 2차 팬데믹을 마주한 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두려움을 호소한다. 해야 하는 업무와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의 상관관계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 이들의 공포를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앞선 1차 팬데믹 이후 확산이 주춤하던 5~6월 사이 정부가 손을 놨다고 비판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은 “1차 팬데믹 이후 고위험 사업장이나 산업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없었다”며 “어느 산업에서 몇 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어떤 환경에서 일했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그런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방역 후진국으로 꼽는 미국도 노동자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전국노동안전보건연합은 공개 사례에 기반한 필수 노동자 코로나19 사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사망자의 이름과 사망일을 비롯해 직업과 사업장·지역·산업군·건강보험 여부 등을 조사한다.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김 센터장은 “이전부터 장기화 우려를 드러내면서도 장기적 대책 마련과 1차 팬데믹 영향 분석에 소홀했던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이재·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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