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련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

오비맥주가 제품 입출고와 재고관리 등 업무를 담당하는 직매장 노동자들에게 본사 유통관리시스템을 통해 업무지시를 내리고 근태관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단계 하도급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본사 물류시스템에 편입시켜 하청노동자를 지휘·감독한 위장도급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30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오비맥주의 표준작업지침서·유통관리시스템 같은 자료와, 오비맥주 본사 직원과 물류하청업체 직원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오비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은 오비맥주 본사로부터 업무관리·감독을 받은 정황이 짙었다. 하청노동자들은 오비맥주가 제공한 표준작업지침서에 따라 업무를 잘 이행했는지 여부로 포상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오비맥주-CJ대한통운-물류회사 다단계 구조

오비맥주는 2014년 글로벌 주류회사인 AB인베브에 인수돼 1천99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경기 이천·충북 청주·광주광역시 3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분회장 강경석)에 따르면 공장에서 생산된 맥주는 전국 23개 직매장을 거쳐 각 대리점에 공급된다.

지게차 기사·트럭운전자·사무원 같은 직매장 노동자들은 오비맥주가 물류운송을 위탁한 CJ대한통운이 재하청을 준 물류회사에 소속돼 있다. 이들은 1년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으며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과 수당을 받으며 일한다. 직매장별로 적게는 6~7명, 많게는 30명이 근무해 평균 인원은 10여명이라고 한다. 전국 23개 직매장에 근무하는 총인원은 230여명으로 추산된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물류회사는 직매장마다 달라도 고용형태나 처우 등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인직매장 노동자들 중심으로 오비맥주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했지만 실상 직매장 전체 노동자에 해당되는 문제라는 의미다.

오비맥주가 키보드 위치까지 지정
채용면접·근태관리도 간섭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은 오비맥주가 제공한 표준작업지침서인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에 따라 배송트럭 출발 절차부터 채용면접 가이드라인까지 세세한 업무지시를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SOP는 납품프로세스와 선입선출·배차·회수용기 관리 등 업무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규정해 놓은 매뉴얼이다.

특히 오비맥주측이 채용과 인력관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 표준면접가이드라인을 통해 면접 과정과 평가방법·채용기준을 명시했다. 면접질문도 “출장, 시간외 근무 등 특별근무가 가능한지 여부” “직업을 선택하거나 직업을 바꾸려는 이유” 등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직매장 우수사원을 선정하는 기준과 절차도 규정했는데, △직원추천 △근태 △제안 △5S활동(정리정돈) 같은 평가항목과 항목별 점수까지 정해져 있다.

이러한 매뉴얼은 참고자료 수준을 넘어 유통관리시스템인 DPO(Distribution Process Optimisation)에 반영돼 직매장 직원들에 대한 업무평가 잣대로 작용했다. DPO는 관리·유통·인력·배송·차량·창고·안전 7개 항목에 따라 세부 규정을 달리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차량’ 항목에서 “트럭·지게차에 요구되는 필수서류와 허가증 목록을 보유하고 있는가?” “트럭·지게차 유지 보수 내역을 기록·관리하고 있는가?” 등 여러 질문에 따라 증빙자료를 첨부해 직매장 운영사항을 보고하는 식이다.

분회 조합원 A씨는 “지게차 기름은 얼마나 썼고, 이동거리는 얼마나 되는지까지 정리해서 입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회 간부 B씨는 “사무실 집기 위치까지 규정돼 있다”며 “노란색 라인 테이프를 책상 앞에 붙이고 그 안에 키보드를 두고 써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체크를 해야 한다. 정수기·소화전·화분 위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청노동자의 근태관리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오비맥주는 직매장 직원의 근무시간과 휴가사용 여부, 결근율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관리했다. 조합원 C씨는 “직매장 직원이 일주일 동안 몇 시간을 근무했는지를 포함한 출퇴근 기록을 주마다 보고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DPO상 정보를 바탕으로 직매장별로 평가가 매겨진다. 1년에 두 번 오비맥주에서 감사를 진행해 최우수 직매장을 뽑는다. 점수 미달로 3회 이상 지적을 받으면 도급계약도 해지될 수 있다. 현장소장으로 일했던 B씨는 “CJ대한통운과 물류회사가 맺은 도급계약서에 ‘화주사인 오비맥주로부터 DPO 점수 미달로 3회 이상 지적을 받으면 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인 만큼 DPO 정보는 CJ대한통운을 거쳐 오비맥주로 전달된다. 직매장 노동자가 DPO에 직매장 내 물류 전반에 관한 정보를 항목별로 입력하면 오비맥주는 CJ대한통운을 통해 데이터를 받아 전체 물류 유통계획을 기획·조정하는 구조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CJ대한통운은 오비맥주의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B씨는 “하이트맥주의 경우 1차 하청을 주는 데 반해 오비맥주가 재하청을 주는 것은 고용 등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시간 채팅으로 오비맥주가 배차 승인”

▲ 금속노련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


실시간 채팅을 통해 오비맥주 본사 직원이 배차승인을 해주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해 10월께 도입된 BSC라는 배차승인시스템을 통해 배차·배송물량·주문관리·재고관리에 대한 업무지시가 오비맥주 직원을 통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이 시스템에 있는 채팅 프로그램이 사용됐다고 한다. 이전에는 지점에서 경영관리프로그램(SAP)을 통해 출고 오더가 접수되면 트럭운전자가 사무직원에게 배차를 받은 뒤 주류판매계산서를 수령해 제품을 상차하는 시스템이었다. 직매장이 ‘다이렉트’로 하던 일에 본사 직원 승인을 거쳐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조합원 C씨는 “BSC팀과 점심시간이 안 맞아서 오더가 들어와도 배차승인을 못 받아 BSC팀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며 “결국 시간을 맞추려 점심시간을 조정했더니 본사 물류팀 직원이 임의로 시간을 바꿔선 안 된다고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본사 물류팀 직원이 직매장으로 출근해 업무지시를 내리고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B씨는 “경인직매장에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본사 직원이 매일 출근했다”며 “지게차 수리나 제품 하자 관련 보고를 하고, 냉각기 현황이나 테스트제품 등을 사진으로 보내 알리는 일도 빈번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부천지역노동교육상담소 관계자는 “재하도급업체(물류회사)가 인력운용과 비용계획 등을 결정할 권한이 없고 오비맥주가 만든 시스템 아래에서 하나의 공급사슬(Supply-chain)로 운영해 온 것”이라며 “도급계약을 통해 물류시스템에 편입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사측이)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해 물류의 핵심기능을 다 통제하면서 고용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청 프로그램 통한 지휘·명령 여부가 핵심
사측 “하도급법 준수”


원청이 업무프로그램을 구축해 하청업체에 업무순서를 비롯한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 것이 업무상 상당한 지휘·명령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여진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경영관리프로그램이나 배차승인시스템은 불법파견을 다투는 데 있어서 상당한 지휘·명령을 내렸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핵심적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요 철강제조업체에서 활용하는 통합생산관리시스템,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을 통한 하청업체 업무관리가 원청의 지휘·명령에 해당하는지는 하급심마다 판결이 엇갈렸다.

광주고법 순천지원은 지난해 2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MES는 공장업무나 제품업무 내용을 구체화한 것일 뿐 구속력 있는 업무지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같은해 9월 광주고법 민사3부는 현대제철 순천공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MES가 단순히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일의 결과에 대한 검수를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하는 PDA 기능에 그치는 게 아니라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측면의 기능이 강화된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오비맥주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을 철저히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사측 관계자는 “직매장 방문시 CJ대한통운 직원과 동행한 경우는 있어도 단독으로 방문하거나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분회는 지난 18일 경인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에 “오비맥주가 하청노동자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에 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다”며 현장점검 및 근로감독을 통해 파견법 위반 여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 달라는 내용의 근로감독 청원서를 냈다. 부천지청 관계자는 “사건 검토 중이므로 다음주 초(8월31일주)에 근로감독 실시 여부를 청원인에게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분회는 지난 6월1일부터 경인직매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 오고 있다. 도급업체 변경으로 인해 사실상 해고됐기 때문이다. 분회는 지난 2월13일 오비맥주 직매장 가운데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한 데 대한 사측의 대응이라고 보고 있다. 기존 물류회사였던 동성특수종합물류에서 새로 도급계약을 맺은 태성로지텍으로 전적한 7명은 노조 탈퇴서를 냈다. 분회는 CJ대한통운과 오비맥주가 고용승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