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달 27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선박에서 불이 나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계는 “예고된 인재”라고 주장했다. 현재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1일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거제지부·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오후 8시27분께 삼성중공업 5만톤급 유조선 엔진룸 내부 스프링기어룸 청수(식음료용물)탱크에서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로 인해 탱크 내부에서 도장 스프레이 작업을 하던 40대 하청노동자가 숨졌고, 탱크 외부에서 도장작업을 보조하던 또 다른 40대 하청노동자는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국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통영해양경찰서·부산지방고용노동청 통영지청은 지난달 31일 현장에서 합동조사를 했다. 통영지청 관계자는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태풍의 영향으로 변동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주 내로 2차 합동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안전보다 비용 우선하는 구조적 문제”

이번 사고가 노동자 안전보다 작업공정 단축을 우선하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거제지부와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따르면 숨진 하청노동자는 밀폐공간에서 유기용제 도료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같은 후행도장 작업에서 청수탱크에 사용하는 도료는 조선소마다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같은 작업공정에서 무용제 도료를 사용한다. 무용제 도료는 유기용제가 들어 있지 않아 대기 중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량을 낮춘 친환경 도료다.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 관계자는 “무용제의 경우 건조가 빨리돼서 20분만 지체해도 스프레이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점도가 높다”며 “무용제 도료 공정이 조금 더 까다로운 것은 맞지만 품질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정열 민주노총 거제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유기용제 도료를 쓰는 이유는 부착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예방차원에서라도 밀폐공간에서 도장작업을 할 때는 폭발 위험이 있는 물질을 쓰는 대신 무용제 도료를 쓰는 방향으로 공법을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물론 유기용제 도료를 썼다고 해서 모두 폭발 사고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환기장치를 통해 밀폐공간에서 인화성 액체의 유증기가 배출이 잘 이뤄졌다면 이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미 노동자 4명이 사망한 2017년 STX조선해양 건조 선박 폭발사고 당시 이러한 문제가 지적됐다. 노동계에서는 과거 사고에서 지적된 사항을 개선하지 않아 사고가 재발했다고 보고 있다.

노동자 4명 숨진 2017년 STX조선해양 폭발사고와 유사
“다단계 하도급구조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 개선돼야”


2017년 STX조선해양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은 작업장 내 설치된 불량 방폭등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방폭등이 폭발사고의 점화원으로 작용해 탱크 내부에 차 있던 도장용 스프레이에서 분사된 유기용제류 유증기에 전기 스파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관계자는 “직접적인 점화원은 STX조선해양 사고와 이번 사고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밀폐공간 안에서 폭발이 일어날 만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근본 문제”라며 “당시 개선사항으로 외부공기 주입을 통해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조건을 조성하고, 내부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 당시 이뤄졌던 노동부 특별감독에서 지적된 문제점도 개선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시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밀폐구역 비방폭형 제품 철거 및 방폭형 제품으로 교체 △밀폐구역 작업시 인화성 증기 배출 환기 설치 △밀폐구역 작업 시작 전·중 산소농도 측정 △밀폐공간과 외부 감시자 간 상시 연락설비 설치, 긴급 상황 대응을 개선방안으로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은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이은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번 사고는 2017년 특별감독에 따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계속 운영돼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다단계 하도급구조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문제가 개선돼야 하고, 원청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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