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가 2일 국회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전속성 기준 폐기와 적용제외 조항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회사 수입 하락, 물량 감소. 이런 것들로 인해 부득이 가입을 원할시 보험료는 전액 본인 부담으로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회사의 사정이 양호하면 당연히 회사 부담금은 부담해야 하나 그렇지 못한 점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부산지역 A화물운송사가 올해 7월1일부터 화물운송 노동자들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임을 알리며 같은달 2일 보낸 공지문이다. 화물운송 노동자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산재보험 가입을 신청받는다는 내용이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료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한다.

지난 7월부터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기존 9개 직종에서 14개 직종으로 확대됐지만, 확대 직종 노동현장에서는 가입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속성 규정과 적용제외 신청제도 탓이다. 사업주들이 해당 제도를 이용해 산재보험 가입을 회피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전속성은 한 사업장에 종속된 정도를 뜻한다. 소득의 절반 이상이 하나의 사업장에서 발생해야 전속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여러 사업장에서 일감을 받는 업무 특성상 특수고용직들은 전속성이 약하다. 또 산재보험법은 특수고용노동자가 원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적용제외 신청을 허용하고 있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는 2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125조1항과 4항에 명시된 전속성 규정과 적용제외 신청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지난 7월 개정 산재보험법 시행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수고용직 범위에 방문 판매원·대여제품 방문점검원·방문교사·가전제품 설치기사·화물차주 등 5개 직종이 추가됐다.

“전속성 기준 미치지 못하게 운송사가 물량 줄이기도”

사업주의 산재보험 기피는 A사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B운송사의 경우 화물운송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배포하고 작성·제출을 요구했다. 이대근 화물연대본부 대외협력국장은 “운송사는 화물운송 노동자에게 배차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운송사가 적용제외를 요구하면 노동자들은 거부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전속성 기준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여태껏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물량을 7월 이후 줄인 운송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대근 국장은 “산재보험 전속성 기준인 매출 50%에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물량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사업주가 악용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전속성 규정의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오윤석 화물연대본부 수석부본부장은 “화물운송업무 특성상 왕복고정 물량을 한 곳에서 받는 경우는 드물고 두세 군데 업체에서 물량을 받는다”며 “이럴 경우 한 군데 사업장에서 50% 매출을 올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화물노동자 40만명 중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는 18.75%인 7만5천명이다. 하지만 화물연대본부는 실제 전체 화물노동자 중 산재보험 적용 대상자는 2.6%인 1천312명에 그칠 것이라고 추정했다. 오윤석 수석부본부장은 “상황이 이런데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직종 확대가 무슨 소용이냐”고 토로했다.

다른 특수고용직 직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책회의에 따르면 20만명에 이르는 대리운전 노동자는 2016년부터 산재보험을 적용받았지만 지난해 기준 적용 대상 사업장은 25개, 등록 노동자는 9명에 그친다. 그나마 적용제외 신청제도로 실질 적용 대상자는 4명뿐이다. 학습지노조 관계자도 “학습지 회사들은 신입교사 위탁계약서 작성 때 산재보험 임의탈퇴서에 함께 서명하게 한다”며 “신입교사 입장에서는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는 회사가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서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귀띔했다.

“고용·계약형태 변화 속에서 전속성 기준 구시대적”

대책회의에 따르면 적용제외 신청을 폐지하는 법 개정은 18대 국회 때부터 19·20대 국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9대 국회 때는 해당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하지 않아 회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전속성 기준을 삭제하는 법 개정안도 18대 국회 때부터 매 회기 발의됐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이날 대책회의는 “플랫폼 노동을 비롯해 고용과 계약형태가 변화하는 속에서 구시대적 전속성 기준으로는 노동법과 사회안전망을 온전히 적용할 수 없다”며 “21대 정기국회가 통과시켜야 할 가장 시급한 법안은 코로나19로 안전과 생계의 사각지대가 여실히 드러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법 적용과 사회안전망 확대 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산재보험 적용 확대 기준을 사업장 전속성으로 삼는 것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사회적 보호 필요성·산재보험이 갖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감안할 때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모두를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산재보험법 관련 규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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