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서울 양천구에서 정수기·공기청정기 같은 가전제품 대여와 정기점검 업무를 하는 ‘LG케어솔루션 매니저’ A(56)씨는 최근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지난 3월 아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A씨는 정수기 점검을 위해 한 고객의 집을 방문한 상태였다. 15~20분간 점검을 마치고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실 딸이 ○○병원을 갔다 와서 저도 자가격리 중이다”는 말을 듣게 됐다.

A씨는 서둘러 고객 집을 나왔다. 곧바로 사무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한 뒤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2주 동안 회사의 지원은 일절 없었다. A씨는 LG전자 자회사 하이엠솔루텍과 1년 단위 업무위탁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 노동자기 때문이다. A씨는 “2차 확산 이후 주변 동료들에게 저와 같은 일을 겪은 사례를 종종 듣는다”며 “같은 일이 반복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의 강화된 방역조치에 따라 비대면 생활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대면서비스가 불가피한 방문점검 노동자들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는 코로나19 고객응대 지침만 내놨을 뿐 이들의 건강권 보장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관련 회사 지침은 매니저 의무에 초점
마스크 월 20개만 제공 … “턱없이 부족”


6일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지회장 김정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매니저들에게 방문시 행동수칙과 코로나19 응대 멘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코로나19 고객응대 가이드’가 제공됐다. 방문시 행동수칙에는 “마스크 및 장갑 착용” “고객과 맨손으로 접촉 금지”처럼 매니저가 지켜야 할 의무를 담았다. 매니저의 건강에 대해서는 “매일 아침·저녁 체온을 측정하고 감염증상이 나타나는지 스스로 건강상태 체크 요망”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방문노동이라는 업무특성상 감염에 노출될 우려가 큰데도 특수고용직 신분 탓에 노동자로서 보호나 안전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국 146개 사무소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니저에게 매달 지급되는 마스크는 약 20개다. 휴대용 손세정제는 지급되지 않는다. 매니저들은 월 마스크 20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객 요청에 따라 주말에도 방문점검이 이뤄지고, 여름철이라 땀이 나는 탓에 하루에 3개씩 갈아 써야 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시적 감염 위협에 노출돼 있다. 방문예약 고객이 자가격리 대상인지 여부를 회사가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 고객의 선의나 운에 매니저의 건강을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방문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고객도 다수라고 한다. ‘내 집인데 마스크를 왜 껴야 하냐’는 인식이 큰 탓이다. 대전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B(54)씨는 “하루에 보통 10~12곳을 방문하는데 3분의 1 정도는 마스크를 안 끼고 있다”며 “고객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착용해 달라는 말을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고객의 소리(Voice Of Customer), 즉 소비자 클레임이 업무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9월부터 방문 안내문자를 보낼 때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감염 무서워도 나갈 수밖에 없어
실질적 안전·생계대책 마련해야


감염이 두려워도 매니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기본급 없이 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점검을 나가지 않으면 소득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부천에서 일하는 C(51)씨는 “사실상 목숨 걸고 나간다”며 “일을 해야 다음달 수수료를 받는다. 나가는 돈은 똑같으니까 불안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C씨는 한 달에 200개 계정(매니저가 담당하는 가전제품 개수)을 맡고 있는데, 코로나19 2차 확산 이후 벌써 계정 20개가 줄어들었다. 방문 안내문자가 3일 전에 전송되는 만큼 앞으로도 얼마나 취소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개인사업자인 이들은 유류비나 식대 등을 모두 자비로 지출해야 한다.

하이엠솔루텍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1일 공문을 통해 “전사 단위·개인 단위 대응지침을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며 “근무 중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코로나19 확산지역으로 출장을 금지하며 회의·소모임·내부행사·집합교육 등 대면접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이엠솔루텍은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해 방문예약이 취소된 경우 수수료의 80%를 선지급하기로 했다.

서울지부는 “다수 사무소에서 무실적자 교육 등을 이유로 미팅을 강행하고 있으며 팀별 식사미팅 등 일정을 공지해 참석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C씨의 경우 9월 첫째 주에 회의를 했고, 다음주도 회의가 예정돼 있다. 지부 관계자는 “실내 10명 이상 모임 금지에 따라 10명 이하로 쪼개서 회의를 진행하는 곳이 다수 발견됐다”며 “하이엠솔루텍은 사무소장이 결정하는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하는데, 본사 차원에서 규제하고 중단할 수 있는데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지급제에 대해서도 소득감소에 대한 실질적 보완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두 달 안에 방문이 이뤄지지 않으면 선지급된 수수료를 토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C씨는 “대부분 고객이 이번에 패스하고 다음 차수(한 차수는 3개월)에 한다는 식으로 연기하는데, 두 달 내에 방문이 이뤄지긴 어렵다”며 “2월에 코로나19로 미뤘던 고객들도 8월에서야 전부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김정원 지회장은 “방문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고객들 때문에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고객들에게까지 마스크를 지급할 수 있도록 매니저들에게 마스크부터 충분히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고객불만과 처리율 등 평가를 보류하고, 많게는 30%가량 소득이 감소한 매니저들을 위한 생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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