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 상임활동가

“먹고살기 위해 들어간 그 회사는 전쟁터보다 못한 재난 현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재난 현장에서 계속 누군가의 죽음을 밟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죽지 않고 일하며 살면 안 되나요? 이제는 제발 그만 죽이고,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듭시다.”

지난해 11월12일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전태일 49주기 촛불행진에 참여한 고 김동준님의 어머니 강석경씨의 발언이다. 담담한 어조의 떨리는 목소리가 겨울 입구의 어둠을 촛불로 밝히며 옹기종기 서 있던 사람들 사이로 어둠을 사르듯 퍼져 나간다. 그렇다. 지금의 노동현실은 ‘전쟁터보다 못한 재난 현장’이다. 고 김동준님은 2014년 1월24일 CJ 진천공장에서 일하다 폭언과 폭행, 격무에 시달리다 기숙사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현장실습생이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노동 현실은 비참하다. 현장실습생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권조차 박탈된 채 노동의 밑바닥에서 학생으로서의 권리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멸시 속에서 살아간다.

프로게이머가 꿈이었던 김동준 학생은 마이스터고 3학년 2학기 대기업 CJ로 현장실습을 나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일이 서툴다,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못 맞춘다며 선임에게 맞고 밖에 알리면 죽는다는 협박도 받았다. 학교에 도움을 청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고인의 어머니 강씨는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무겁다. 회사 일이 힘들다는 아들에게 “일에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 보자”고 말해서다. 만약에 당장 회사에서 나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들은 곧 있을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가며 살았을 것이라 자책한다.

노동권도, 학습권도 빼앗는 파견형 현장실습제도

남겨진 사람들은 ‘만약에’라는 가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만약에’의 굴레가 개인의 가슴을 무너뜨리는 철공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바퀴가 되려면 ‘만약에’의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받아안아야 할 질문으로 말이다.

‘만약에’ 고등학생들을 졸업하기 전에 기업체에 파견하는 현장실습제도가 없었다면, 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졸업을 했다면, ‘만약에’ 기업에서 학생들을 존중했다면. ‘만약에’ 직장내 괴롭힘과 폭력을 감시하는 장치와 문화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는 살아 있었을 것이다. 학생을 기업에 파견해서 현장실습을 하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는 낮은 임금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착취한다. 그러나 현장에 가르침은 없다. 기업체에 파견하지 않아도 학교에서도 충분히 현장실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을 뿐 아니라 기업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스템과 구조가 없다.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는 ‘노동에 대한 실습’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경험’을 쌓을 뿐이다.

그래서 강씨는 더더욱 아들의 죽음이 아들이 나약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밝히고 싶었다. 회사의 관리·감독이 없어서 생긴 죽음이라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산재인정은 아들의 죽음이 개인적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임을 공인받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대책위도 없었고,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여동생과 공인노무사의 도움이 전부였다. 발품을 팔아 회사를 찾아가고 친구들도 만났다. 회사는 합의서에 산재처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다행히 후배들에게 폭행을 한 3년차 선임이 징계로 보직이 변경됐다는 진술을 받았다. 선임에게 폭행을 당한 사람이 화풀이로 고 김동준님과 동기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입증됐다. 폭행과 죽음의 인과관계, 회사의 관리·감독 책임이 인정돼 산재인정을 받았다. 직장내 괴롭힘과 폭행으로 인한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으로는 최초 산재승인이었다.

“동준이가 그렇게 된 게 내 탓으로만 여겼는데 산재승인을 받으면서 그게 동준이와 나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게 밝혀져서 마음의 부담이 조금 덜어졌어요. 동준이가 나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회사의 시스템이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난 것이잖아요. 저도 산재인정을 계기로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더욱 보게 됐어요.”

죽음의 제도를 알리기 위해

현장실습을 하던 자녀들이 세상을 떠난 고 홍수연님 아버지 홍순성씨, 고 김동균님 아버지 김용만씨 등이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활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제도로 또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국회는 현장실습보다 더 나쁜 도제학교를 확산하는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일학습병행법)을 통과시켰다. 일학습병행법은 “도제식 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노동자라는 신분을 부여한다‘고 설명하지만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에 실습을 나간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갔음을 시인하는 것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윤만을 위해 학생들의 착취를 합법화한 조항도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장 외 교육훈련 시간은 학습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 탓에 학생들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상당한 시간에 대해 임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법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용만씨는 “특성화고에서 컴퓨터를 공부한 내 아이가 왜 엉뚱한 식품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 혹독하게 괴롭힘을 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지,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현장실습생 90% 이상이 전혀 자기가 공부한 것과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일을 해도 늦지 않은데, 기업과 결탁해서 아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쓰게 만드는 게 국회의원이고 대통령이냐”고 외쳤다.

이렇게 ‘다시는’ 가족들은 죽음의 현실을 알리느라 분주하다. 현장실습제도 폐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간담회도 한다. 충청도도 가고 광주도 가고 부르는 곳은 어디든 간다. 강씨는 분주히 뛰어다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현장실습제도와 관련된 간담회를 하면 활동가나 교육청 관계자들이 옵니다. 그런데 왜 학부모들은 안 올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작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취급을 받으며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부모들이 알아야 할 텐데요. 사실 시민들이 알아야 나쁜 제도를 바꿀 수 있잖아요. 저도 그때 알았더라면 동준이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학생들이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훈련을 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알리는 일부터 유가족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그러나 아직 죽음의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안전한 실습’을 강조하고서도 후속조치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코로나19가 확산 중인데도 직업계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기능대회를 강행하면서 또 한 명의 고등학생이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학생들의 과도한 노동시간과 과도한 경쟁을 시정하겠다고 발표하고도 ‘55회 전국기능경기대회’를 9월에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여전히 학생들의 인권은 후순위다.

오늘도 강씨는 죽음의 제도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아들 동준이에게 말했듯이 나직하게 말한다. “너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란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saltom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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