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ㅇ사에서 용접사로 일하는 A씨는 지난해 10월 용적작업 도중 바닥에 놓인 의장품 자재를 밟고 미끄러져 발바닥 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회사가 공상처리를 권유하자 A씨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했다. A씨는 부상 회복 이후 지난 3월 업무에 복귀했지만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잔업과 특근 없이 정상근무(8시간)만 하게 됐다. 월급이 70만원가량 줄어들었다. A씨와 같은 반에 속한 10여명의 동료들은 원할 때 연장근무를 할 수 있었다.

A씨만 잔업·특근에서 배제되는 일이 5월까지 계속되자 회사에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6월에도 3일을 제외하고는 잔업·특근을 하지 못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이러한 사실을 제보받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위반으로 해당 업체 대표를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통영지청에 고발했다. 산재보험법 111조의2는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통영지청은 “고발사건을 처리할 권한이 없다”며 사건을 경찰로 이송했다.

산재보험법에 불이익 처우 금지 조항이 신설된 지 3년이 넘었지만 해당조항이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관집무규정상 산재보험법이 업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사건을 이관하고 있어서다. 집무규정 개정을 통해 노동부가 사건을 담당해 전문성·책임성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노동부는 제도개선에 뒷짐을 지고 있다.

근로감독관집무규정상 산재보험법 포함 안 돼
노동계 “경찰은 산재보험법 전문성 부족”


10일 노조 대우조선지회에 따르면 A씨 사건은 현재 거제경찰서에 넘어간 상태다. 거제경찰서는 고발인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고발인 조사를 받은 김정열 민주노총 거제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대우조선지회 부지회장)은 “해당 업체는 10년간 A씨를 포함해 산재신청이 2건으로 확인됐다”며 “산재은폐와 관련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거나 추가조사를 할 필요가 있는데 경찰은 배경지식이나 전문성 부족으로 범죄사실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 명시된 근로감독관의 직무범위에 해당하는 노동관계법령은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사법경찰직무법)에 근거한다. 사법경찰직무법에는 근로기준법·산업안건보건법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산재보험법은 제외돼 있다. 때문에 산재보험법 위반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돼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것이다.

산재를 예방하고 감독해야 할 노동부가 ‘산재신청에 따른 보복행위’만 따로 떼어내서 경찰에 이관하는 것이 업무 비효율을 낳고 경찰의 전문성 부족으로 노동자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박세민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경찰은 산재보험법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서 터무니없는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박세민 실장은 “4개월 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취업치료 결정이 나온 노동자에게 휴업급여를 주지않고 연차처리한 사건이 있었다”며 “노동부도 행정공문을 통해 불이익 처우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경·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제도개선 뭉개기, 노동자 2·3차 피해
“산재 보복행위는 산재은폐와 직결”


노동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제도개선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다. 노조가 지난해 12월 국회 정론관에서 ‘산재신청 및 요양 중 불이익처우 폭로’ 기자회견을 연 뒤 노동부는 <매일노동뉴스>에 “(근로감독관집무규정 개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해당 부처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9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협의가 진척되지 않은 것이다.<본지 2019년 12월6일자 9면 ‘산재보험법 위반은 경찰 업무? 산재신청했다고 불이익받은 노동자들, 노동부 모르쇠에 두 번 운다’ 참조> 노동부 관계자는 “사법경찰직무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항이라 검찰·법무부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노동자만 2·3차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관계자는 “하청노동자들은 산재신청을 하기도 어렵고, 불이익을 당했을 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불이익 처우 금지 조항을 근거로 고발한 사건 자체가 많지 않은데 어렵게 고발이 이뤄져도 노동부는 우리 업무가 아니라며 경찰서로 넘기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지부를 비롯한 대우조선해양 5+2 공동투쟁 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산재 보복행위는 곧 산재은폐와 직결되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중대재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으로 이어진다”며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노동자가 권리행사로 인해 사업주에게 불이익을 받게 될 경우 다른 사안은 노동청에서 관할하는데 산재신청에 따른 불이익 처분만 빠져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경찰이 사업장 내 권력관계를 포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불이익 처분 사건은 전문성을 가진 노동청이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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