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해 12월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중국 우한발 정체불명의 폐렴으로 처음 보고됐던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진자가 3천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신규 확진자는 하루 3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몇 개월이면 확산이 종식될 것이라고 했던 전문가들은 몇 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산불이나 태풍과 같이 한철 재난이 아니라 수년은 지속될 역병 코로나19에 세상은 오늘도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다. 이에 따라 나라마다 암울한 경제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정부 지원에 기대던 사업장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고, 이제 인력감축 같은 구조조정이 거센 해일로 노동자들을 덮칠 수 있다는 예감이 불안하게 밀려오고 있다. 이런 날에 나는, <매일노동뉴스>에서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사태에 관한 변희영(공공운수노조 공항‧항공 고용안정 쟁취 투쟁본부장)의 기고를 읽었다. 지난주 이스타항공에서 사측이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정리해고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소유주가 실질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아무개 의원인지 아닌지는 별 관심이 없다. 사용자 자본이 노동자들을 내쫓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고의 말에 관심이 있다. 이 나라에서 이 코로나19 사태에 자본과 권력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사태를 통해 파악하고 싶어서 기고문을 꼼꼼히 읽었다.

2.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지난 7일 노동자 60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렇게 첫 문장을 시작한 글은, 육아휴직자와 당장 필요한 정리인력 외에 “항공기 6대 운항에 필요한 414명을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이 통보받았다고 쓰고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를 정리해고 표적으로 삼았다”며, “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 4명 전원과 대의원 11명 중 10명이 명단에 포함됐”고, “노조 조합원의 정리해고 명단 포함 비율은 80%인데 반해, 비조합원 비율은 59%로 크게 차이가 난다”고 비판했다. 정리해고란 사업장이 폐업해 소멸할 때에 하는 해고를 말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 사업장이 존속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서 노동자 일부를 해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상자를 어떻게 선정하는지가 중요하고, 그에 따라 노동자의 운명이 좌우된다.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현 근로기준법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24조2항) 바로 이러한 정리해고의 의의로 볼 때 당연한 것이다. 변희영의 비판은 이러한 대상자의 선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말해 주는 것이겠다. 다른 조건에서 차이가 없는데도 노조 조합원을 비조합원에 비해 높은 비율로 선정해서 하는 정리해고라면 부당하다.

계속해서 기고는 “2월24일 고통분담·임금삭감 노사합의를 뒤엎고 다음날 임금 60%를 체불하더니, 3월24일 구조조정을 위해 국내선 운항까지 전면 중단했다. 3월31일 수습부기장 등 188여명을 계약해지했고, 4월10일 희망퇴직을 신청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반기만 500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고 쓰고 있었다. 여기서 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 사측의 합의 위반, 임금체불, 그리고 계약해지·희망퇴직 실시를 통한 인력 감축에 관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이스타항공에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앞서 많은 고통을 감수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자본에 의해서 노동에 전가되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코로나19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데, 그로 인한 고통은 노동자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았다. 임금이 체불되고, 계약해지와 희망퇴직 실시로 일자리를 잃는 일, 이것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회사 경영위기에 노동자가 당해야 할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도 고용유지에 관심을 두고 대책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밝혀 왔다. 그것으로 과거 IMF 관리체제, 당시 정리해고제를 근로기준법에 규정하고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김대중 정권의 대책과는 구분된다고 여겼다. 실제로도 그때와 같이 대규모 인력감축 같은 구조조정 정책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련해 추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통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됐다고 봤던 것인데, 적어도 이스타항공에서는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은 것인가. 글을 읽으면서 답답했다. 이번 정리해고에 앞서 계약해지와 희망퇴직 실시로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인데, 그걸 막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고용유지를 강조해 왔음에도 이스타항공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라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심각하게 경영위기에 처하게 될 사업장에서는 정부가 강조해 온 고용유지는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신의 사업장이 이스타항공 정도의 경영 악화에 처해지지 않기만 바랄 수밖에 없다.

기고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지배구조, 편법 증여, 세금 탈루, 부정 채용 등 수많은 경영상의 부정. 정부의 코로나19 고용유지정책에 반해 거액 매각대금을 챙기기 위해 구조조정에만 몰두한 반노동 패악들. 그 과정에서 이유 없는 국내선 운항중단 등으로 손실을 만회할 기회도 없이 빠르게 재무구조를 파탄시킨 무책임. 그리고 현재 벌이고 있는 기업해체 수준의 정리해고. 이 모든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실질적 오너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묵인했고,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며, 그야말로 자본과 권력에 대한 분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본의 패악을 넘어 권력의 행태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이겠다. 그것이 어디까지 사실일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스타항공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 왔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고, 그에 대한 노동자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의 분노를 살펴보면 단순히 일자리를 잃게 됐다는데 있지 않다. 정리해고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데 크게 분노한다.

3. 정리해고는 노동자 탓이 아니다.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정리해고다(근로기준법 24조1항). 이처럼 회사 경영상태가 어렵다며 행하는 정리해고란, 결국 회사 경영을 잘못한 탓이고, 따지고 보면 사용자 자본을 탓할 일이다. 그리고 그 탓에는 온갖 사용자의 패악이 열거될 수밖에 없다. 변희영이 위와 같이 사용자 자본을 비난한 것도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노동자로서는 당연히 갖게 되는 사용자 자본에 대한 혐의일 수 있겠다. 사용자 자본의 잘못을 노동자에 전가하는 것이 정리해고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혹시라도 그걸 단체교섭에서 요구하기라도 하면 자본과 권력은 감히 노동자가 침범할 수 없는 사용자의 절대권한인 양 질색하며 대응해 왔다. 심지어 노동자가 그 사업장에서 내쫓기는 정리해고를 두고서도 우리 법원은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라며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식의 판결을 해 왔다(대법원 2010. 11. 11. 선고 2009도4558 판결 등). 노동자는 정리해고에 대해 사용자 결정에 따라야 할 뿐, 그 실시 여부에 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것은 이 나라의 법이 이렇게 방치해 왔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강조해 왔고, 이에 관한 여러 가지 지원 정책을 마련해 추진해 왔다. 하지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정리해고 제도를 방치해 두고서 하는, 고용유지를 내세운 권력의 말과 행동에 언제까지고 이 나라 노동자가 믿고 기다릴 수 있을지는 점점 의문이 든다.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이나 해고 회피노력에 관한 의견을 듣는 것만으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현재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이런 것만으론, 정리해고를 실시하고자 하는 사용자 자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바란다면, 노동자가 사용자의 정리해고 실시에 대응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줘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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