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쟁의행위과 관련해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나 하청노동자 파업시 원청을 사용자로 보는 판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의 사용자,
파업에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행위”


창원지법은 지난 8월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을 막은 택배연대노조 조합원 1명에게 무죄, 5명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CJ대한통운을 쟁의행위와 전혀 관계없는 제3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택배노동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전면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에 앞서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2월 “CJ대한통운이 간접고용 택배기사 파업에 대체인력을 투입한 것이 노조법 위반”이라고 판결해 사용자가 원청임을 전제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달 9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이 내린 판결은 한발 더 나아갔다.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못박았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당한 택배연대노조 조합원 6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이 노조법 43조상 택배기사의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다른 지역의 직영기사를 대체인력으로 투입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노조법 43조1항에는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재판부는 지난 3일 나온 한국수자원공사 관련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대체인력 투입을 막은 조합원의 쟁의행위를 정당행위로 인정했다. <본지 2020년 9월7일자 3면 “원청에서 파업 대체인력 투입 막은 하청노동자 실력행사 정당”기사 참조>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온 사용자이므로, 하청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를 받아들일 의무(수인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원청의 교섭의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을 택배노동자의 사용자라고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사건을 담당한 이환춘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이번 판결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연대노조와의 관계에서 노조법 43조의 대체인력 사용금지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라는 점을 인정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향후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의미한 판결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질적 지배력’이란, 원청 사업주가 하청 노동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도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단체교섭상 사용자로 확대해석 가능”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는 “법원이 쟁의행위와 관련해 실질적인 지위에 있는 사용자를 CJ대한통운이라고 밝힘으로써 쟁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전제로 (특수고용 택배기사의)단체교섭권 확보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단체교섭 과정을 거쳐 쟁의행위를 해야 하므로 CJ대한통운이 (대체인력 투입에 관한) 노조법 43조의 사용자로 인정됐다면 (단체교섭권에 관한) 노조법 29조의 사용자일 수 있다고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이번 판결의 취지대로라면 CJ대한통운이 지금까지 위탁 대리점을 중간에 세워두고 노조와 교섭을 거부해 온 주장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1심 판결로는 선례성이 강하지 않아 항소심에서 다시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권 교수는 “울산지법이 2018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교섭요구에 대해 ‘원청은 하청에 대한 교섭의무가 없다’고 판결해 그와 같은 논의가 확산한 적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그와 반대로) 하청의 쟁의행위를 원청이 수인하고 사용자성이 있는 것처럼 나왔기 때문에 노조에서 노동위원회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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