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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우울·불면, 목격자의 고통] 현대중공업 ‘끼임 사고’ 피해자 동료 3명 산재인정

기사승인 2020.09.2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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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복지공단 1일 승인 … 노동계 “관련 인식 여전히 부족”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현대중공업 특수선 시운전부에서 일하는 박아무개(42)씨는 지난 4월16일 오후 6시10분께 잠수함 P961호선 어뢰발사관 축 조정작업을 하다 무전으로 “빨리 나와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밖으로 뛰어나가자 동료인 김아무개(45)씨가 끼임 사고를 당해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박씨는 다른 동료들과 김씨를 사고 지점에서 잠수함 옆에 설치된 서비스타워(수직통로 구조물)까지 옮겼다. 구조대가 잠수함 안까지 들어오기에는 제약이 컸던 탓이다. 박씨는 김씨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날 이후 박씨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동료의 사고 장면이 자꾸만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박씨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같이 구조작업을 했던 동료 2명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이들 현대중공업 직원 3명이 진단받은 PTSD가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됐다. 3명은 현재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이들과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김씨는 어뢰발사관 내부에서 유압으로 작동되는 문을 조정하는 시험을 하다 갑자기 작동된 문에 머리와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11일 뒤에 숨졌다.

동료들 트라우마에 죄책감까지

20일 <매일노동뉴스>가 3명의 재해발생 경위서·산재보상보험 요양급여신청 소견서·보험가입자 의견서 등을 입수해 보니 3명 노동자 모두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우울·불면 등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일 박씨와 노아무개(39)씨·강아무개(40)씨의 산재요양급여를 승인했다. 박씨는 5월7일부터 8월6일까지 12주간 통원치료를 마친 뒤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추가로 산재요양급여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노씨는 24주간 통원치료가, 강씨는 24주간 통원치료와 8주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노씨와 강씨의 경우 사고 목격·구조 참여에 따른 충격에 자신 때문에 동료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더해졌다. 노씨는 사고 당일 김씨의 위치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유압 작동문을 움직이라는 무전을 보냈고, 강씨는 무전에 따라 유압 작동문을 닫았다. 두 노동자는 사고 이후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소한 자극에 분노감을 느끼거나 미세한 소리에도 신경이 예민해지는 과각성 증상을 보였다. 현재 노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다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7월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다.

이들의 산재신청을 도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간부는 “개인의 과실 이전에 생산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작업지시를 내린 구조적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부에 따르면 김씨가 하던 작업은 사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유압 작동문의 작동을 해제한 뒤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사고 당일에는 이러한 절차 없이 작업이 이뤄졌다. 노씨가 이날 무전 신호수 업무를 처음 맡았다는 점도 문제다. 빠듯한 공정에 맞추느라 사전에 사고 위험에 대한 안전교육도 없이 숙련되지 않은 인력을 투입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일터 복귀 위한 통합적 치료 필요”

현대중공업은 질식·끼임·추락 사고 등으로 올해에만 5명이 숨졌다. 지난 13일에는 러시아 국적 하청노동자가 안전그물망이 설치돼 있지 않은 작업장에서 일하다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노동자는 현재 위중한 상태로 전해졌다. 중대재해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만큼 동료들이 사고를 목격하거나 구조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박씨·노씨·강씨처럼 산재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예외적이라는 게 지부 설명이다. 지부 관계자는 “트라우마는 개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돼 왔다”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수습이 우선적 목표가 되기 때문에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에게 회사도, 노조도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고 털어놓았다. 지부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노동자를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충돌사고 이후 산재 트라우마가 공론화하며 정부가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피해자 지원을 하고 있지만 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셈이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에 따르면 PTSD로 산재를 승인받은 삼성중공업 13명의 피해자 가운데 12명이 9월 초 산재 요양기간이 종료됐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추련 사무국장은 “12명 중 대부분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데 지원이 끊긴 데다 이들 중 60%는 실업상태에 놓여 있다”며 “트라우마로 인해 조선업종에 돌아갈 수는 없는데 이들이 가진 경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폭은 좁고 교육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재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게 궁극적으로는 사회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주 사무국장은 “약물치료만이 아니라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적 치료가 필요하다”며 “일터 복귀, 사회 복귀로 연결될 수 있는 장기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어고은 ago@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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