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대법원은 이달 3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사건 판결을 선고했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 10월24일 전교조에게 법률상 노조가 아니라고 통보한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려 7년 만이다. 이 기간 전교조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대법원 판결 이유 중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 의견이 인상적이다.

“법원은 형식적인 자구 해석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법률이 구현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입법목적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법의 의미를 부여해야.” “뒤처진 법 규정의 전통적 해석·적용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법률 개정이라는 입법기관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는 이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해서는 안 된다.” “법을 해석·적용할 때에는 그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만일 해석의 결과 심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러한 해석을 배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법률의 해석은 단순히 존재하는 법률을 인식·발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

법원이 법률을 문언대로 해석한 결과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것이 정당한 해석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법 문언을 넘어서는 적극적 법 형성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판단은 별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대법원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판단을 뒤집을 상급법원이 없는 최종심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일선 하급심 법원에서도 법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과 적용으로, 형식적 정의가 아닌 입법목적을 실현하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법률 해석뿐만 아니라 재판 진행과 같은 절차적인 영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동시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해고 노동자가 있다. 소송 진행 중 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정을 내리자 회사는 수개월이 지나서야 해고자를 복직시켰다. 그러나 원직복직이 아니었다. 회사는 해고자와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당초 임명장에 기재된 보직·근무 장소가 아닌 외딴 곳으로 복직명령을 내렸다.

부당전보를 다투는 새로운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임명장에 기재된 보직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칫 소송이 지연될 경우 소가 각하될 위험이 있었다. 진행 중인 부당해고 소송에서 부당전보 소송으로 청구취지를 변경하기로 했다. 회사의 이번 복직명령(전보처분)은 부당한 해고처분을 철회하고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별다른 업무상 필요성 없이 보복성으로 내린 인사명령이라고 주장했다. 당초의 해고처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사권 남용행위이고, 애초에 해고소송을 제기한 것은 피고의 해고처분을 무효화하햐 원직에 복직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같은 분쟁에서 해결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청구의 기초가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구 청구(부당해고)와 신 청구(부당전보) 사이의 사실자료가 공통되므로 이를 신소 제기의 방식으로 다퉈야 한다면 소송경제에 반하고, 절차가 현저히 지연될 수 있으므로 신속한 재판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고’와 ‘전보’는 명백히 다른 처분이라는 형식적인 이유로 청구취지 변경을 불허했고, 이미 복직됐다는 이유로 해고소송을 각하했다.

어쩔 수 없이 부당전보를 다투는 새로운 소송을 제기했다. 남은 보직 기간이 충분치 않았기에 서면과 증거 제출을 서둘렀다. 기존 해고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와 같은 재판부가 배정됐기에 쌍방의 주장과 증거가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이 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전보처분(복직처분)도 무효라는 판정을 내렸다. 수회 변론을 거치고 마지막 변론기일만을 남겨둔 때 법원은 갑자기 변론기일을 두 달 뒤로 연기시켰다. 코로나19로 인해 법원행정처가 휴정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하루가 급한 사건을 무려 두 달이나 미룬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회사의 전보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더라도 선고기일이 보직기간을 넘겨 지정될 경우 소가 각하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소송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물어 줘야 할 수도 있다. 장문의 사유를 적어 기일을 조금이라도 당겨 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기일변경 신청을 기각했다.

해고자의 보직기간은 11월까지인데 연기된 변론기일은 10월 말이다. 이제 해고자의 권리구제는 오로지 법원이 선고기일을 언제로 정하는지에 따라 달렸다. 만일 법원이 보직기간을 넘겨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단지 보직기간이 도과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체적인 판단 없이 소를 각하한다면, 해고자는 법원의 실질적인 판단조차 받지 못한 채 형식적인 패소 판결문을 받게 된다. 이것은 과연 정당하게 도출된 결론인가. 헌법 27조가 보장하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과연 지켜진 것인가.

엄혹했던 1974년, 작가 정을병은 소설 <육조지>에서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고 일갈했다. 부디 2020년의 법원은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 의견처럼, 결과의 정의까지 고려하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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