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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망하는 나라 일본

기사승인 2020.09.2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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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일본’ 하면 떠오르는 말이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멀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반 정도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 거리는 딴판이다. 역사적 이유가 크다.

이조시대는 접어 두더라도 서세동점 이후 명치유신으로 적극적인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은 일본. 청일전쟁·러일전쟁 두 차례의 전쟁에 승리하면서 가장 가까운 나라 조선을 침략해 일왕의 영토와 신민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조선 민중의 역사적 반외세·반봉건 봉기인 동학혁명을 근대식 무기로 유린했다. 조선 민중에게는 일본인은 ‘왜놈’이었다.

이로 인한 심리적 거리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패해 조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이 맺어지고 수교가 이뤄진 이후 지금까지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 근대에 들어와 자행한 강도적 침략과 강점, 그리고 지배와 수탈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도에 대해 자신의 영토라고 강변하는가 하면 군국주의 침략과 지배를 미화하는 거꾸로 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싫어하거나 일본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국인의 이런 반일 심리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와 국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은 지리적으로 이웃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과제다. 최근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와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문재인 정권의 반일 민족주의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필자는 최근 이 칼럼에서 미국에 대해 두 번 다뤘다. 미국 자본주의는 쇠락하고 있고, 미국 민중은 계급투쟁으로 떨쳐나서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일본은? 미국 자본주의가 쇠락 중이라면 일본 자본주의는 쇠망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일본 민중은 계급투쟁으로 떨쳐나서지 않고 있다. 나라의 앞날이 어둡다.

수구와 자유주의를 막론하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최근까지도 일본 자본주의가 아베노믹스로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해 왔다. 그러나 일본 자본주의는 아베 정권 8년 동안 방대한 재정지출,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완화·규제완화라는 세 개의 화살에도 제로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디플레이션 위기는 계속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부터 공황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6%(연율로는 -6.3%)이고, 올해 1분기는 -0.9%(연율로는 -3.4%)다. 그 결과 2019 회계연도(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경제성장률은 -0.1%다. 2014 회계년도 이후 5년 만에 역성장을 한 것이다. 이런 경기하강의 연장선에서 올해 2분기 성장률은 -7.8%(연율로는 -27.8%)로 폭락했다. 전후 최악의 실적이다.

이런 경제공황은 일본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자본주의의 기관차라는 미국이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자본주의나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 경제의 일본화’라는 표현을 쓴다. 일본처럼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다음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이런 형편이니 장기불황의 원조인 일본의 상태는 어떻겠는가.

알다시피 일본 자본주의는 1990년대 초 거품붕괴로 복합불황의 늪에 빠진 이래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복합불황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다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품붕괴 이후 일본 자본가계급이 잘못 대처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일본 자본가계급은 1990년대 초 거품붕괴 이후 체제 개조 없이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국채 발행으로 조성한 돈으로 쓸모없는 토건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토건국가! 자본은 비정규직을 늘리고 임금 몫을 줄였다. 그 결과 사회양극화가 심화했고, 그것이 저출산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낳았다. 이것은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총인구감소를 낳았다. 그리고 노동력 공급과 소비수요를 제한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투자수요를 제한했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가로막았다. 이런 악순환을 극복하겠다고 나선 아베는 대대적인 재정지출과 양적완화로 자본을 지원하는 데 급급했다.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를 구사하면서. 그것은 성장률 침체가 디플레이션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 효과는 있었지만 경기를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 사회는 노동력과 인구 감소로 점점 더 활력을 잃어 갔다. 노동자의 삶이 개악되는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투쟁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과로사·고독사에 이어 사토리 세대(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이 없는 젊은이)니 초식남이니 히키코모리(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일본 청년)니 하는 말들이 생겨났다.

<위험한 일본경제의 미래>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엣킨슨은 이 인구감소를 경제위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지목한다. 그 위에 정부는 시스템 개조 없이 미세조정만 하고, 자본은 더 많은 탐욕만 추구하고, 노동자는 의욕을 잃은 현실을 지적한다. 그래서 일본경제는 장기침체를 넘어 몰락의 문턱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 지배계급이 이런 일본 자본주의의 위기를 환상(illusion)으로 덮어서 모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신문 전 주간 오오노 히로토는 최근 프랑스 노란조끼가 마크롱 정권을 비롯한 기성질서에 대한 환멸(disillusion)의 표명으로서 환상을 떨쳐 버리는 운동이라고 한다면, 아베 정권은 ‘군사강국 일본’이라는 환상으로 일본자본주의의 위기를 덮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마치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환상으로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미국에서는 민중이 환상을 거부하고 있다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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