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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와 택배노동자

기사승인 2020.09.22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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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혜인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 최혜인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 전면 거부선언을 했다가 철회했다.

2012년까지 한 해 평균 2.25명의 택배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면, 코로나19가 발생한 올해 상반기에만 7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다. 물론 택배노동자 다수가 특수고용직이라는 사정을 감안하면 집계되지 않은 산재가 훨씬 많겠지만, 어쨌든 모두 산재였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물량은 코로나19 이전보다 26.8% 늘어났고 분류작업량도 38.5% 증가했다. 여기에 추석을 앞두고, 이동 제한을 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추석선물까지 늘어나 물량은 더욱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호황이라도 된 듯 CJ대한통운이나 롯데글로벌로지스 같은 택배업계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택배노동자가 주 평균 71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한 결과다.

대부분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직으로 고용형태가 열악하다. 주어진 일을 다 하지 않으면 노동자를 해고할 때 필요한 정당한 이유 같은 건 묻지도 않고 쉽게 해고될 수 있다. CJ대한통운 같은 대기업과 택배노동자는 계약상 아무런 관련이 없어 CJ대한통운은 대폭 늘어난 영업이익의 즐거움을 취하기만 할 뿐이다. 일하다 쓰러져 간 택배노동자를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택배노동자는 하지 않아도 되는 분류작업까지 하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해야 했던 것이다.

배달노동자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방역지침에 따라 저녁 9시 이후에는 모든 카페와 음식점에서 취식을 금지하면서 거리는 한산해졌다. 음식점을 드나드는 사람은 헬멧을 쓴 배달노동자뿐이었다. 외출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식사나 패스트푸드·커피까지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배달노동자는 더 바빠졌고, 더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그런데 저녁 9시가 넘어가면 취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배달노동자는 배가 고프면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어야 했다. 배달비를 지불하면 손쉽게 누릴 수 있는 안온함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하기 시작했던 2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간헐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무직으로 일하며 글을 쓰는 게 대부분인 업무특성상 컴퓨터와 전화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운 좋게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감염 위험을 줄이고 있다. 평소에도 인터넷으로 다양한 물건을 구입하곤 했는데, 재택근무를 하며 활동반경이 줄어들자 인터넷 쇼핑을 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집으로 많은 택배가 오갔다. 옷·화장품·책, 심지어 간식으로 먹을 과자까지, 코로나블루라도 되는 듯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는 답답함은 쇼핑을 하고 택배를 받는 즐거움으로 어느 정도 상쇄했다. 그리고 택배강국답게 언제나 빠르게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택배노동자의 노고를 망각한 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선제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거나, 코로나19와 관련된 상황이 발생하면 급히 재택근무로 전환을 하기도 한다. 이에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발표했다. 아무래도 재택근무는 낯선 방식이기 때문에 재택근무로 인해 노동권이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경우는 그나마 사무직, 정규직 일부에 한정된다.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이면 재택근무를 하는 게 좋겠지만, 매뉴얼 발표가 과연 정책의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내용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사람이 몸을 움츠리는 코로나19 시국에도 택배노동자처럼 더 높은 확률로 감염 위험에 노출되거나 더 과로하게 되는 직종이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한 우리 사회의 극단이 코로나19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비대면을 생활화하기 위해 택배와 배달 이용량이 늘어났다면 택배노동자와 배달노동자가 많은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장시간노동으로 과로하고 산재와 코로나19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됐을 뿐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가격을 결정한다는 법칙은 비정규직, 특수고용직이란 비틀어진 관계 속에 교란됐다. 폭발적인 수요에 대처하느라 과로하지만, 그 성과는 택배노동자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착취당하는 무료노동 시간만 늘어날 뿐이었다.

재택근무로 바뀐 일상을 생각하면서 문득 거리 위를 일터 삼아 일하는 노동자를 생각하게 됐다. 불안정한 상태가 길어지면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연습하며 위생과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계기가 됐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한 삶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택배노동자들은 정부와 택배업계에 분류작업을 할 추가인력 투입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부가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발표한 것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그러니까 조금 더 상황이 괜찮은 정규직·사무직을 위한 대책이었다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코로나19로 바뀐 일상을 온몸으로 받쳐 주고 있는 택배노동자·배달노동자를 위한 대책이 당장 필요해 보인다.

최혜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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