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다248998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망인은 1985년 2월1일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008년 1월께까지 소하리공장과 시화연구소의 간이금형반에서 근무하다가 2008년 2월께 현대자동차의 남양연구소로 전적했다. 망인은 2008년 8월25일 급성백혈병(이 사건 질병)을 진단받고 2010년 7월19일 이 사건 질병으로 사망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업무상재해로 인정돼 망인의 유족들은 각종 급여를 지급받았다. 한편 기아차와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업무상재해로 사망과 6급 이상 장해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월 이내 특별 채용하도록 한다”고 규정돼 있다. 현대차와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도 같은 취지의 단체협약 조항이 있다(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

망인의 처와 자녀 2명은 기아차에 대해 근로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면서, 자녀 1명은 단체협약에 근거해 주위적으로 기아차, 예비적으로 현대차에 대해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2. 사건의 경과 

원심은 기아차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하면서도, 자녀 1명의 채용청구에 대해서는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사용자의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고,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해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하며, 유족의 생계보장의 필요성이나 취업 요건 등을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사용자에게 직계가족 등 1인에 대한 채용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유족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기 때문에 민법 103조에 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대상판결)는 위 원심의 판단에는 협약자치의 원칙과 민법 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피고들에 대한 채용계약의 청약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 청구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3. 판결의 의의

학설은 단체협약 규범적 효력의 외재적 한계에 대해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등의 기준이 근로기준법 등에 규정된 강행법규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내용이면 이는 상위의 법규범에 저촉되므로 무효’라고 보면서 대법원 1990. 12. 21. 선고 90다카24496 판결과 1993. 4. 9. 선고 92누15765 판결을 인용한다. 그런데 위 판례들은 강행법규 위반이 문제된 것으로 민법 103조 위반을 이유로 단체협약을 무효로 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대상판결은 민법 103조에 의해 단체협약 효력여부가 문제될 때 고려해야 할 사정과 판단기준에 대해 최초로 판단한 것이라 하겠다.

가. 대상판결은 민법 103조에 의해 단체협약이 무효인지에 대한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대상판결은 “단체협약이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라는 점 및 노동조합법에 의해 그 이행이 특별히 강제되는 점 등을 고려해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상판결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대한 것이지만, 대법원이 민법 103조에 의해 단체협약을 무효로 판단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적용돼야 할 접근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나. 대상판결은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103조에 의해 무효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밝혔다.

대상판결은 “사용자가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 따라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 등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조합원의 직계가족 등을 채용하기로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면, 그와 같은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고 “이러한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이르거나 채용 기회의 공정성을 현저히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유나 경위, 그와 같은 단체협약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 채용대상자가 갖춰야 할 요건의 유무와 내용, 사업장 내 동종 취업규칙 유무, 단체협약의 유지 기간과 그 준수여부, 단체협약이 규정한 채용의 형태와 단체협약에 따라 채용되는 근로자의 수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용자의 일반 채용에 미치는 영향과 구직희망자들에 미치는 불이익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해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103조에 의해 무효로 볼 수 있는 판단기준을 밝혔다.

위 판단기준에 근거해 대상판결은 “피고들의 사업 규모, 피고들이 신규채용한 근로자 숫자 대비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따른 유족 채용의 비율과 이에 더해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피고들이 시행하는 공개채용 절차에서 유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특별채용 절차를 예정하고 있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따른 채용이 피고들에 대한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구직희망자들의 채용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사용자들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4. 결언

고용노동부는 2016년 3월28일자 보도자료(법률을 위반한 단체협약 42.1%로 나타나-4월부터 고용세습, 인사경영권 제한 규정 등 집중개선지도)를 통해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 등을 고용세습이라 규정했다. 위 단체협약 개선조치는 당시 정부의 노조와해 공작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정부는 대상판결 이후 현재까지 이 사건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무효화시키려 했던 것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사과도 없다. 정부는 대상판결이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밝힌 것은 ‘민법 103조 위반을 이유로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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