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년 전 즈음으로 기억한다. 동네 단골 패스트푸드점에 키오스크(무인결제기)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가게에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처음에는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다. 혹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빨리 주문하려고 허둥지둥했다. 그럴 때면 체크카드는 왜 그렇게 인식이 안 되는지. 그러나 이제는 익숙하다. 오히려 종업원과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니 나같이 말이 없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모든 사람이 키오스크를 반기는 건 아니다.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커다란 장벽이다. 키오스크 탓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청년이거나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다. 소비자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키오스크에 다가가 버튼을 누르고,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를 하는 것은 종업원이 하던 노동의 일부다. 이제는 소비자가 무보수로, 노동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 하고 있지만.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림자 노동은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대표적으로 가사노동이 있다. 밥을 만들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 가치를 무시하기 일쑤다. 매일 각 가정에서 무수한 가사노동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가사노동자는 종종 가정부라고 폄하 당한다.

택배노동도 마찬가지다. 택배노동자의 주평균 노동시간은 71시간에 달한다. 이 중 절반가량은 분류작업인데, 무임금 노동이다. 택배 배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전작업이지만 그림자 노동 취급을 받는다. 보통 새벽부터 일터에 나와 오후가 다 돼서야 분류작업이 끝난다. 그 다음이 배송업무다. 그간의 노동은 어떻게 되는가. 그저 잊힌다. 택배노동자의 삶은 오후부터 시작된다.

이외에도 간호·요양·경비·방문 같은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여러 노동에 그림자 노동이 침투해 있다. 방문 가정의 가사노동을 하는 요양보호사, 주민의 개인 심부름을 하는 경비노동자 등이 그 사례다. 이러한 노동은 말이 없다. 문제가 터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야 사회의 관심을 받는다. 재가 요양보호사, 방문노동자는 성폭력에 시달린다. 올해에만 7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는 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그림자 노동을 기억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잊은 채 살아가다 말이다.

그림자 노동을 하는 이들은 상당 부분 비정규 노동자다. 불안정한 지위, 낮은 고용안전성이 주된 이유다. 이용자의 작은 항의만으로도 고용을 위협받을 수 있다. 개인 사업자로 계약한 경우 일감이 끊길 위험이 도사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요구를 들어주고 업무 외의 일을 하게 된다. 물론 무보수다. 그림자 노동은 갑질·폭언·폭행·성폭력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해고도, 고용도 쉬우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림자 노동은 더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의 업무 대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재택근무용 기기를 구입하고 설치하는 걸 누가 할까. 노동자다. 자비로 기기를 구입하고 무보수로 설치한다. 이 밖에도 각종 셀프서비스, 화상 회의·교육 준비, 모바일 뱅킹도 그림자 노동이다. 심지어 인터넷 서핑을 하고 SNS 플랫폼에 게시물을 올리는 행위도 그림자 노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 기업은 그 행위를 통해 빅데이터를 쌓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종종 직장 브이로그(Vlog)를 본다. 최근에는 배달·조리 노동자가 나오는 동영상을 봤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생각지도 못한 일거리와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묵묵히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림자에 가려져서는 안 되는 고귀한 노동을 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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