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노총이 새로운 실험에 들어갔다. 한국노총 직할 전국 단위 일반노조를 만든 것이다. 지난 14일 출범을 알린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가 그 주인공이다. 고용사업주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노조를 하고 싶어도 힘이 없어서 노조 울타리로 들어오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한, 문턱 낮은 노조다. 전국연대노조의 첫 위원장은 김동명(52·사진) 한국노총 위원장이 맡았다. 지난해 1노총 지위를 내준 후 올해 1월 선거에서 “아프고 열악한 노동자가 한국노총을 찾도록 하겠다”고 공약한 김 위원장이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 위원장은 “미조직, 영세사업장,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단순히 조직화 문제가 아니다”며 “결국 법과 제도로 어떻게 이들을 위한 안전판을 마련하느냐의 문제이고 곧 한국노총의 문제”라고 밝혔다.

당장 올해 정기국회에 노사관계의 사활이 걸려 있다. 근로기준법을 5명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것부터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까지 새로운 시대에 맞게 노동기본권을 확장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고착화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두 달,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동관계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재인 정부와 한국노총과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전국연대노조가 출범했다.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전국연대노조는 한국노총 위원장선거에 출마하면서 제시한 핵심 공약이다. 한국노총 직할 전국 단위 일반노조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좌고우면하느라 예상보다 출발이 늦어졌다. 코로나19 영향도 적지 않아 10월에야 출범식을 하게 됐다. 막상 설립하니 기대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물론 우려도 있다. 기존 지역노조는 물론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를 한 조직으로 묶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에서 갈등이 싹틀 수 있다. 또 한국노총 위원장이 직접 전국연대노조 위원장을 겸임하는 문제에 대한 조직 내 걱정 섞인 시선도 있다.

그래도 내가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출발하는 것인 만큼 모든 것이 열악하다. 신뢰를 쌓고 조직이 확대되기 전까지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위원장을 맡겠다고 했다. 우리가 사각지대라고 할 때 ‘사’자는 한자로 ‘죽을 사(死)’를 쓴다. 사각지대 놓여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다. 이들을 조직하는 것은 단순한 조직사업이 아니다. 우리 시대 노동문제를 법·제도적으로 해결하고 모든 노동자를 위한 안전판을 만드는 것이다. 사업장 단위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한국노총이 해결할 과제다.”

평소 언어유희를 즐기는 김 위원장은 “전국연대노조 위원장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일 시키기 편하다는 것”이라며 “전국연대노조 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을 혹사시킬 수도 있다”고 농담했다. 이제 막 출범한 전국연대노조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부·여당 사회적 합의 뒤엎고 사과는커녕 해명도 없다
약속이 이토록 가볍다면 누가 사회적 대화를 신뢰하겠나”


-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고용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얼마 전 발표한 한국노총의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위기 4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구조조정이 관광서비스업이나 항공업같이 사태 초기에 직격탄을 맞았던 산업들을 초토화하고 이제는 제조업 깊숙이 들어온 사실이 확인된다.
“그렇다. 9월 말 조사한 결과인데 단위사업장 중 200곳 가까이가 휴업 또는 휴직하고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같은 고용위기를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광·서비스업이나 항공업처럼 잘 알려진 위기업종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까지 광범위하게 구조조정이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코로나19가 최소한 내년 중반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정부에 코로나19 고용위기 사업장에 대한 철저한 근로감독과 고용위기 극복 지원을 위한 컨설팅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 특별고용지원업종을 확대하고 긴급생활안정지원금 확대, 파견이나 사내하도급 사업장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체계 개편도 요구할 예정이다.”

- 7월28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어떻게 평가하나.
“노사정 합의안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각에서는 추상적이라거나 해고금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회적 위기 속에서 노사정이 합의를 이뤘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 사회적 위기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약속 자체가 아니라 실천이다. 세상의 가장 좋은 이야기를 다 적어 놓아도 지키지 않는 약속은 종이 한 장의 무게에 불과하다. 지난 9월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노사정 합의가 깨졌다.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 중단에 정부와 여당이 합의한 것은 공공의료 확대안을 담은 노사정 합의를 뒤엎은 것이다. 신뢰는 사회적 대화의 첫 번째 가치다. 정부가 스스로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는 행위를 했는데 이에 대한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하겠나.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약속이 바뀐다면 아무도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연말 ILO 기본협약 비준 위해 가능한 모든 투쟁”

- 양대 노총은 지난 15일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한 국제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면 예산과 법안심의가 본격화하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토론회에서 강조한 부분인데, 노조법 개정에 대한 정부 법안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의 온전한 보장이라는 목적과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 가득 차 있다. 최근 집권여당에서 이를 보완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추가적으로 내놓았는데 이마저도 국제기준에 미흡하다. 부족한 법안인데도 집권여당이 이를 관철하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협약의 핵심이다. 연내 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을 위해 가능한 모든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 문제야말로 문재인 정부 5년을 규정하는 핵심 잣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 올해 11월 노동자대회 개최가 불투명한데.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대규모 집회가 어려울 수 있다. 집회를 개최하지 못한다면 그에 맞게 투쟁 결의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일단 21일 양대 노총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연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에 대한 공동의 입장을 내놓는 자리다.”

인터뷰 당시는 한국노총이 원격전자투표 방식으로 중앙위원회를 열던 때였다. 15일과 16일 진행된 투표 결과 중앙위원회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항공산업노련 가입안이 77.9%(127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항공노련은 연합노련에서 탈퇴한 대한항공노조와 아시아나 열린조종사노조가 지난 5월 설립한 연합단체로 6월 한국노총에 가입 인준신청을 했다. 조합원은 1만2천여명이다. 한국노총은 조직규모가 1만명 이상이면 산별연맹으로 가입할 수 있다.

- 중앙위에서 새로운 산별연맹 가입이 의결됐다. 또 안건에서 한국노총 산별협의회 운영규정 제정안도 포함됐는데 노동의 미래를 대비한 한국노총의 올바른 산별구획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쪽에서는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항공노동자 조직 확대를 위해 독자적인 산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쪽에서는 기존 산별연맹에서 탈퇴한 뒤 한국노총 가입을 신청하면 우후죽순 다 승인할 것이냐는 비판도 한다. 둘 다 일리 있는 의견이다. 이견은 어느 조직에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반목과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항상 최상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야 하는 조직원의 의무도 있다.

산별협의회는 제조, 공공, 금융사무, 운수, 연합·서비스 5개로 구성된다. 한국노총의 조직운영 준칙은 조직의 단결로 노동자의 권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1기업1노조, 1산업1산별, 1국가1노총의 노동운동 정신을 구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직 대상 중복으로 인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유사산별 간 통합을 적극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 정기훈 기자


“하루아침에 74년 역사 가진 한국노총 변할 수 없어
현장과 소통하며 ‘변화’만들어 갈 것”


- 이번 중앙위에서 노동의미래위원회 기본계획안도 상정됐다. 보고서에서 한국노총은 2020년대 ‘노동이 존중되는 평등복지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위원장 임기 내인 2022년까지 하드웨어를 구축하겠다는 실행전략을 제시했다. 한국노총 내부 시스템을 일대 전환한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
“74년 역사와 전통의 한국노총을 단번에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시대 변화에 맞게 발 맞춰 갈 수 있는 노총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사회 변화의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지만 노동조합 운동은 형태나 운영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있다. ‘변화’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현장과 소통하고, 하나하나 다져 가면서 만들어져야 한다.”

- 해당 보고서에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와 명칭이 같아서 혼동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노총이 말하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어떤 내용인가.
“질문을 바로잡아야겠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참여정부 이전부터 한국노총이 주창해 오던 노사관계 지향점이다. 경제·사회 주체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중심이 돼 현장(작업장)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분절·갈등을 지양하고, 상생협력·연대를 통해 화합·통합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에는 3천500여개 노조가 있는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적인 언론과 사회 일부에서 노조를 ‘투쟁’의 틀에 가둬 놓기 위해 노사관계를 ‘대립과 갈등’ 구조로 몰아간다. 결국 나빠진 노조에 대한 인식은 노조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조직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회통합적인 노사관계가 필요하다.”

- 위원장 임기 중 지난 4월 국회의원총선거를 치렀고, 2022년 대선을 치른다. 문재인 정부와 관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동존중을 국정과제로 삼은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한국노총의 요구가 정부 국정 목표가 됐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다. 그 뒤에 정부가 펼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단축 등도 정부에 대한 기대를 가지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거나 후퇴한 내용도 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 한국노총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5·1플랜을 올해 핵심 사업으로 제시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획이 궁금하다.
“5·1플랜’은 5명 미만 사업체 노동자 588만명에게 시간주권 보장, 1년 미만 근속 노동자 497만명에게 퇴직급여 보장, 플랫폼 노동자 50만명에게 사회보험과 노조할 권리 보장,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 220만명에게 사회보험과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 확대를 위해 특고 노동자 산재·고용보험 적용확대 같은 법·제도 개선을 관철해 나갈 것이다.

전국연대노조 출범을 계기로 200만 조직화 사업도 전면화할 것이다. 최근 제조업부문에서 무급휴직과 일방적인 정리해고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과 관련해 사용자단체에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이행되도록 요구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고용조정에 맞서는 투쟁을 지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장과의 소통이다. 집행부 출범 이후 코로나19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고, 조합원 동지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지난 1월 선거기간 중에 전국의 많은 동지들에게 선거 끝나고 꼭 소주 한잔 하자고 약속했는데 지키지를 못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꼭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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