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는 배달·택배노동자 노동환경 개선과 산재보험 적용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주문하는 성토의 장이었다.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전속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야당 의원에 의해 제기됐다. 반면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 죽음이 잇따르는데도 택배업체 관계자는 이번 국감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국감 기간 내내 산재 제도 개선을 외쳤지만 정작 맹탕국감으로 마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사무처>


환노위 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대상 국감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 막는 적용제외 개선 ‘한목소리’


환노위가 이날 국회에서 근로복지공단·안전보건공단·한국산업인력공단 등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했다. 증인으로 참석한 윤성구 CJ대한통운 파주제일대리점장과 참고인인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등을 대상으로 특수고용직 산재 적용제외 신청제도의 문제점을 살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8일 숨진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고 김원종씨의 적용제외 신청이 대필로 작성됐다는 문제 등을 조사하고 있다. 신청서가 대필로 작성됐다면 김씨는 산재를 인정받을 여지가 생긴다.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조사 결과를 묻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검토 결과 대필로 확인되고 있고, 대행사인 회계법인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같은 당 양이원영 의원이 허위 작성된 적용제외 신청을 직권 취소해야 한다고 주문하자 강 이사장은 “그럴 계획”이라고 답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특수고용직 14개 직종의 보험가입률은 20% 수준이다. 80%가량이 적용제외를 신청했다는 의미다. 입직신고를 한 특수고용직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여서 실제 가입률은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의원은 사업주 강요로 산재보험 포기가 관행처럼 돼 있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적용제외신청 사안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노동부·근로복지공단에 요구했다. 강 이사장은 “택배업과 적용제외율이 높은 직종을 먼저 조사하겠다”며 “그 결과를 보면서 나머지 직종 조사계획을 세워서 하겠다”고 답했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택배 터미널에서 상·하차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 104명의 산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참여자 중 60명(57.7%)이 일하다 다친 경험이 있었다. 병원 진료를 받은 40명 가운데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노동자는 단 1명이다. 35명은 자비로 치료를 했고, 4명은 회사가 비용을 줬다. 장 의원은 “이들은 조직화가 돼 있지 않아 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며 “이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일하다 다쳐도 보호해 줄 수 있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물 흘리면 난리 나지만 배달노동자 피 흘리면 아무 일 없어”

택배노동자 못지않게 배달노동자의 노동조건도 심각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하면 올해 8월까지 배달 중 교통사고로 산재 승인된 배달노동자는 558명이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산재신청을 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배달노동자 중 산재보험 가입자 비율은 0.4%에 불과하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 중 음식 국물을 흘리면 난리가 나지만 노동자가 피 흘리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로 배당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고발했다. 배달 플랫폼사는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배달 소요 시간을 정한다. 정한 시간 내에 배달하지 않으면 배달노동자에 일감을 적게 부여하는 등 벌칙을 준다. 배달노동자가 도로 위 무법자가 되는 까닭이다.

산재보험 적용제외 제도는 배달노동자의 보험가입률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다. 박 위원장은 “퀵서비스의 경우 사업주가 내라는 대로 산재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사례를 많이 접했다”며 “보험료가 부담되니 적용제외신청서를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제도의 가장 민감한 주제인 전속성 문제를 꺼내 들었다. 노동부는 주로 하나의 사업에 종사하는 특수고용직에게만 산재보험 가입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전속성 문제로 특수고용직이 제대로 산재보험 적용이 안 되고 있다”며 “산재보험법의 전속성 문제는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팡 관계자 종합국감 증인 출석
정작 문제 많은 택배업 관계자는 증인 채택 안 해

재해자가 산재보험 혜택을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도 적지 않게 나왔다. 산재보험법에는 범죄행위로 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산재로 보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노동부는 이를 근거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에 따른 12대 중과실로 사고가 발생한 배달노동자는 산재 승인에서 배제된다. 이를테면 일하다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가 나도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통사고처리법의 중과실이 산재보험법에서 말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며 “근로복지공단 지침 등으로 재해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불승인했지만 공단 본부 심사,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 재심사, 행정소송 등을 거쳐 최종 산재로 인정되는 비율이 일정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재심이나 행정소송으로 산재 결과가 번복된 내용은 공단에서 사례를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산재신청이 있을 때 신속·정확하게 판단해 재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환노위 26일 종합감사에는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증인에 추가돼 참석한다. CJ대한통운이나 한진택배 등 택배업계 관계자의 증인 신청이 있었지만 여야 합의가 불발해 성사하지 못했다. 택배업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제기됐는데도 현장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책임·권한을 가진 회사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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