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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택배-택배노동자 계약서 보니] 계약해지한 ‘을’ 보증금 뺏기고 1천만원 위약금 내기도

기사승인 2020.10.22  0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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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는 저 같은 사람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유언, 지키려면 … “노동부 현장 감독하고, 사회적 논의기구 꾸려야”

   
▲ 시민사회 원로 및 각계 대표자들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즉각적인 분류인력 투입과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정기훈 기자>

지난 20일 세상을 등진 로젠택배 노동자 김아무개(50)씨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지만 마이너스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을(택배영업소)이 계약만료일까지 계약을 유지하지 아니하고, 을의 일방적인 계약해지시에 보증금을 일체 반환하지 않는다”는 계약서 조항이었다. 로젠택배는 택배노동자를 택배영업소(장)라 부른다. 로젠택배가 지점과 상생을 표방하며 만든 지점협의회는 택배노동자와 맺는 계약서를 함께 사용한다. 계약서 내용이 같다는 의미다.

21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로젠주식회사 계약서 개설 약관’을 보면 ‘을’인 택배노동자가 계약해지를 요구할 권한은 없다. 대부분 택배노동자는 불공정한 계약임을 알고도 “일을 하기 위해서” 서명을 했다. 소장이라는 외피 탓에 근로기준법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과 해고 위협, 불합리한 요구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한 지역에서 통용되는 또 다른 종류의 ‘영업소 계약서’에는 “을(택배영업소장)이 개인 사정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 위약금 1천만원을 갑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다. “계약해지 및 계약기간만료 후 1년간 동종 또는 유사업종에 종사할 수 없다”고 정했다.

“몸 상하지만 물량 놓기 힘든 구조”

올해 세상을 떠난 11명의 택배노동자는 자신의 몸이 상하는 줄 알면서도 혹사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근원에는 특수고용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이 자리한다.

지난달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9월1일 기준 코로나19를 전후로 노동자들이 배송한 택배 물량은 314개로 이전보다 26.8% 늘어났다. 택배노동자 821명 중 91.3%는 코로나19로 업무시간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하지만 물량이 늘어났다고 자신이 맡은 배송구역을 조정하는 일은 드물다. 물량 증가 추세가 언제 꺾일지 몰라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가족과 1박2일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과로사한 정아무개씨 동료는 “고인이 ‘아들·딸 대학 보낼 때까지는 열심히 벌어야 한다’며 일했다”고 증언했다.

기본급은 물론 당장 일을 그만둬도 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다. 배달한 물건수만큼 받는 건당 수수료가 임금의 전부다. 고용도 불안하다. 김춘석 전국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현장의 불합리한 갑질이 심각하다”며 “한 영업소에서는 지점장이 택배노동자에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만두라고 한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8년 6월 발표한 ‘택배서비스산업 일자리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380명의 택배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57.4%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고 일했다. 1년 단위(40.8%)이거나 2년 단위(1.8%)로 갱신되는 형태도 많았다.

일을 하려면 불공정한 내용을 담은 계약서라도 서명할 수밖에 없다. 로젠택배 지점협의회에서 통용되는 계약서 24조(계약해지 요건)에는 13항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조항 모두 “을이 ~하지 않으면 혹은 ~하면” 계약해지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로젠택배 부산강서지점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자세히 안 봤다”며 “계약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솔직히 일하려면 계약서 내용은 알아도 따지고 들 수 없다”고 말했다.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정당하고 대등한 당사자 간 계약이라면 갑이 무슨 잘못을 하면 을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을이 무슨 잘못을 하면 갑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두 다 을의 잘못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상식적으로 대등한 당사자 주체 간 계약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지난 2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아무개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계약서인 ‘로젠주식회사 계약서 개설 약관’. <전국택배노조>

“근로기준법 사각지대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불렀다”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시정조치를 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인이된 김씨가 유서에 남긴 마지막 문장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택배노동자는 자신 차량을 사용해 일하니 기본 지출이 있고, 어느 정도 소득이 보장돼야 생존이 가능한 구조지만 로젠택배 해당 지점에서는 그런 조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듯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주 5일제를 정착시키고 노동시간 상한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노동시간이 적어져 물량이 줄 경우 임금 또한 줄어드니, 소득이 보전될 수 있도록 수수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배업계 수수료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교통연구원은 ‘택배서비스산업 일자리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에서 “2017년 택배시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4천700억원(9.91%) 증가한 5조2천100억원이지만 택배운임은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택배업체수가 증가해 서비스보다 가격기반 경쟁이 심화하는데, 이런 시장환경은 (중략) 종사자 근무환경을 열악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신인수 변호사는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이 체결된 근본 원인은 택배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아서”라며 “고용노동부나 노동청에서 즉시 감독권을 행사해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지난 19일 “CJ대한통운·한진택배 등 주요 서브터미널 40곳과 대리점 400곳을 대상으로 이달 21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과로 등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 긴급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사자들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택배사 터미널을 대상으로 안전보건조치 긴급점검에 나섰지만 이 조치가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며 분류작업 인력 즉시 투입과 사회적 논의기구 마련 등을 요구했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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