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도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21일 철도노조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5일 한국철도공사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징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5조가 정한 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실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쟁의행위 정당성이 상실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건은 수서발 KTX노선 경쟁체제 도입에 반발한 2013년 철도노조 파업에서 비롯됐다. 그해 11월12일 노조는 임금인상과 철도민영화계획 철회, 해고자 복직을 요구안으로 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했다. 8일 후 노조는 조정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 조합원 1만8천여명 가운데 80%의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중노위가 같은 달 27일 조정 종료 결정을 내리자, 노조는 12월9일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저지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1차 파업이 12월31일까지 이어졌다. 공사는 노조의 파업에도 수서KTX 운영법인을 설립했다. 노조는 그 이듬해 2월 2차 파업을 벌였다. 공사는 파업 참가자들이 1인 승무 시범운행을 방해하거나 수색차량사업소장을 폭행했다며 노조 관계자들에게 해임·정직·감봉 등 징계를 내렸다. 이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고 중노위는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에 반발한 공사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쟁의행위 절차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가 노조법 45조가 정한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실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면서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노조법은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를 하도록 제한할 뿐 찬반투표 실시 시기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조정전치주의는 쟁의행위 발생을 회피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지 쟁의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쟁의행위가 조정전치 규정에 따른 절차를 거치지 않았어도 무조건 정당성을 결여한 쟁의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당시 노동쟁의 조정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정당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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