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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노동

기사승인 2020.10.22  0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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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이숙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일 새벽 또 한 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졌다.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보증금 500만원, 권리금 300만원을 냈다. 대리점은 권리금까지 받고 ‘소장’이라는 직함을 주면서 배달구역을 넘겼지만, 한 달 200만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구역이었다. 심지어 최근에 생활고로 일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대리점은 후임자를 구하지 않으면 퇴사할 수 없다며 압박했다. 노동자는 한동안 자신의 차에 구인광고를 써 붙이고 다니면서 일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택배노동자의 호주머니엔 대리점의 갑질, 생활고 문제, 택배노동의 고단함, 후임자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통과 분노가 빼곡히 적힌 유서가 들어있었다.

추석 전 7명 이상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택배노조들과 민주노총·시민사회단체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과로사대책위)를 구성했고, 분류작업에 추가인력 투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택배사의 인력투입은 추석 택배대란과 노조 파업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뿐이다. 하루 업무 중 43% 이상을 분류작업으로 보내야 하는 택배 노동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추석 뒤 노동자 3명이 연이어 숨졌다. 최근 5년간 24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했고, 올해에만 과로사로 추정되는 노동자가 10명이나 된다. 그리고 20일 대리점의 횡포와 갑질을 견디지 못한 택배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미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노동이 있었다.

9월에 발표한 과로사대책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평균 12.7시간 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올해만 코로나19로 인해 업무량은 평균 30% 늘어났다. 분류작업과 배송업무 모두 증가했는데, 특히 분류작업 증가폭이 컸다. 전체업무 중 분류작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43%이지만 대부분 택배노동자의 위수탁계약 내용엔 분류작업에 대한 명시적 사항이 없다. 그럼에도 암묵적으로 해야 하는 ‘공짜노동’이다. 더군다나 이번 실태조사 대상자 대부분은 노조 조합원이기에 실제 택배노동자의 노동강도는 더욱 힘들고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불황에도 대기업 택배사의 매출은 엄청나게 늘었다. 영업이익 1위인 CJ대한통운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838억원으로 전년 대비 17%가 증가했다. 한진택배도 31%가 오르는 등 호황을 맞았다. 그런데도 택배사가 택배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반노동적이고 비열했다. 올해만 5명이 사망한 CJ대한통운의 경우 64.1%의 택배노동자가 산재적용제외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번 국감을 통해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 자체가 대필 작성됐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대필 작성 문제도 심각하지만 택배노동자 스스로 작성한 적용제외 신청서조차 택배사나 대리점의 압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택배업계는 추석을 전후해 분류작업 인력 2천67명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상은 노조가 있는 터미널에만 투입하는 꼼수로 일관했다. 고 김원종님이 일했던 터미널에는 단 한 명의 분류작업 인력도 투입되지 않았다. 하루 400개가 넘는 물량을 분류하고 집화해 배송해야 했던 고 김동휘님 사망에 대해 한진택배는 평소 지병으로 사망했다며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에 대해 “더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0개월 동안 11명의 노동자가 숨지면서 택배노동의 심각함과 열악함이 드러난 지금에야 택배노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특별한 대책’이 말 그대로의 ‘특별한 대책’이 되려면,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그동안 택배노조와 과로사대책위가 제기했던 문제를 최대한 수렴하고 반영해 근본적인 해답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택배사와 대리점의 갑질·횡포 문제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를 실시해 사측 사과를 이끌어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택배노동자뿐만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가 전속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가입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문제와 산재보험 적용제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 중 83%가 산재적용 제외신청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정확한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이숙견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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