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주최로 29일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 황선자 중앙연구원 부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자동차산업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요. 국제연구기관들은 2035년을 기점으로 전기차 생산량이 내연기관차 생산량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그 시기가 빨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노동자의 미래예요. 공상과학 만화 같은 자동차산업 앞날에 노동자의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의 말이다. 자동차산업은 불공정 원하청 거래를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 미래차로의 전환이라는 산업구조 개편에 코로나19 충격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결정적 국면’을 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돼 있는 자동차산업 생태계는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섰다.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동력장치 부품사 82.9%
“미래차로 고용불안 심해질 것”


29일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발표한 금속노련 소속 자동차부품사 노조 99곳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0곳 중 6곳은 “미래차(전기차·수소차·자율주행차)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은 13.1%에 불과했다.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면 부품의 축소·변화가 불가피하다. 연료 저장공간으로 사용되던 연료탱크, 엔진의 열을 식혀줄 냉각수·라디에이터 그릴 같은 부품들이 필요 없게 된다. 2018년 일본 자동차부품공업협회 발표에 따르면 전기차로 산업이 전환할 경우, 내연기관 부품 3만개 중 1만1천개가 사라진다.

이번 조사에서 주력 생산품이 동력발생 장치(엔진 관련 부품, 변속기와 내연기관 파워트레인, 연료탱크 등)인 사업장(35곳)의 고용불안은 82.9%까지 치솟았다. 전장부문도 고용전망이 밝지는 않았다. 배터리나 모터·인버터·공조시스템·경량화 소재 등 미래차 시장과 관련이 높은 부품사(16곳)의 경우도 절반 이상(56.3%)이 “미래차가 고용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기업규모가 클수록 미래차 준비를 하는 사업장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미래차 부품을 생산하거나 연구개발 중이라는 응답을 보면 소기업은 33.4%에 그쳤지만 중견기업 65.4%, 대기업 100%였다”고 설명했다.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면 사회양극화는 지금보다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차로 ‘공정한 전환’
모색하는 독일 산별노사와 정부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2019년 6월 베를린에서 5만명이 모인 집회를 열었다. 집회 슬로건은 공정한 전환(Fair Wandel)이다. 독일 금속노조는 미래차로의 전환에 적극적이다. 전제도 확실하다. 노동자의 희생이 없고 전환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독일 금속노조는 공정한 전환의 원칙으로 세 가지를 내세운다. △모빌리티와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 △독일 내 생산기지 보장 △사회적 안전망 확대다. 친환경차 개발과 충전소 및 전력망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노동자가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할 것과 산업공동화를 막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보장할 것, 급속한 기술변화에서 고용불안을 사회연대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모든 연령층에 사회보장이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

‘전환지도’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개별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기술변화와 고용과 숙련 및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부서별 단위로 상세하게 그린 지도다. 지금까지 2천개 사업장에서 전환지도를 그렸다. 이런 조사결과를 근거로 ‘미래협약’과 ‘전환펀드’ ‘전환단축노동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협약은 개별기업 노사가 맺는 것으로, 디지털전환을 위해 필요한 중장기 투자계획부터 인력개발·생산기지·일자리 보장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전환펀드와 전환단축노동 임금은 대정부 요구다.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위기시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정부가 지원하는 단축노동 임금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이문호 소장은 “미래차 전환은 가속화할 것이 분명한데 우리나라는 부품사의 전환능력 얼마나 되는지, 어떤 지역에서 얼마나 고용이 줄어들 것인지조차 분석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노사정의 대응도 눈여겨봐야 한다. 중층적 업종협의체인 ‘자동차정상회담(Autogipfel)’은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각 부처 장관, 독일 금속노조와 폭스바겐·BMW·벤츠 독일 3대 완성차 대표와 부품사 대표 같은 사용자가 참여한다. 지난해 시작해 지금까지 4차례 회의가 열렸다.

의제는 독일 자동차산업의 ‘하이로드 모델’의 지속가능성과 노사정 역할이다. 이 소장은 “독일 자동차산업은 하이로드 전략을 지키면서 성공적인 미래차 전환을 기획한다는 점과 노조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며 “‘(미래차로)전환은 신속하게, 그러나 공정하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층적 업종협의체와 상생의 산별협약, 사업장의 미래협약”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한국노총중앙연구원과 금속노련,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중소제조고용안정위원회는 ‘자동차산업 구조변화와 정책과제’ 토론회를 열고 앞으로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금속노조도 이날 ‘한국 자동차산업 현황과 전망’ 이슈페이퍼를 통해 “현재 부품사들이 마주한 과제는 개별 사업장에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어느 때보다 부품사 노조들이 기업별 활동 관행을 벗어나 실질적인 산업정책적 개입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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