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11월2일 0시 기준,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한 환자들 중 40대는 4명, 30대가 2명, 29세 이하에서 사망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13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20대에서 40대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쉽사리 쓰러뜨리지 못하는 연령대의 창창한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소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탱하며 죽어간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지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연령대 전체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사람보다 코로나19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 노동강도와 부담으로 사망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감염 확산을 막는 거리두기를 지탱하다 벌어진 일이니 이들의 죽음도 코로나19 바이러스 탓인가? 치료제도 백신도 아직 없으니 불가항력인가?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틈 탄 탐욕이 죽인 것이다. 시민들은 택배 주문 한번 클릭할 때마다 노동자들의 소진과 죽음에 공범이 되는 것만 같아 주저주저하고 손이 떨리는데, 어디는 매출이 10조를 바라보니, 어디는 매출이 수천억원, 영업이익은 수백억원 늘었다느니 점유율이 몇 퍼센트를 돌파했느니 한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군인들이 죽어나가도 전쟁 특수로 돈더미에 올라앉은 군수업자들을 보는 것만 같다.

과로사의 대표 격인 뇌심혈관질환 산재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과로 기준은 12주 평균 주당 60시간을 초과하는 업무시간을 기본으로 한다. 그 정도로 일한 사람에게 뇌경색, 뇌출혈이 오고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과로를 원인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은 주 71.3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쓰러지거나 사망하는 택배노동자들은 모두 산재이고 과로사가 된다. 사실은 주 52시간 이상만 업무를 하더라도 250킬로그램 이상의 중량물을 취급하는 등 힘든 일을 수행하는 경우라면 업무관련성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에게는 주 52시간도 과중한 노동인 것이다. 산재보상 기준을 마련하는 이유는 산재로 해줄 테니 죽도록 일해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노동은 죽음에 이를만한 위험이 있으니 그렇게 일하도록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숙주를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알고리즘 유전자는 플랫폼 속에서 배양되어 증식하고 공기 매개 감염과도 같이 온라인으로 전파되고 창궐한다. 단 1바이트의 공감과 연민조차 없는 알고리즘의 플랫폼은 당당하게도 또 다른 숙주를 모집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개인에게 십만원의 벌금을 물리고, 감염 환자가 직업을 숨겼다고 감옥에 가두는 시대다. 그런데 왜, 죽을 것만 같아도 택배를 멈출 수 없는 노예계약을 강제하고, 하루 15시간·주당 70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이 필요한 물량을 배당하는 탐욕의 알고리즘을 숨기고 돌려도 벌금 한 푼 물지 않는가. 코로나 시대를 지탱하는 필수노동자, 택배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해 코로나 방역을 위태롭게 하는데 한 평 반 감옥에 갇히기는커녕 수만평의 광활한 물류센터를 지어 올리며 흥하는가.

당장 죽음의 택배 행렬을 멈춰야 한다. 과로에 견디다 못한 택배노동자들이 줄줄이 사망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초주검 상태로 필사의 노동을 수행하는 이 비상한 시국에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물류를 멈추어서라도 살려야 한다. 탐욕의 알고리즘을 부수고 공존의 알고리즘을 짜야한다. 인공지능(AI) 뒤에 숨은 자들이 설계하는 죽음의 플랫폼 알고리즘을 당장 멈춰야 한다.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고 얼마든지 예측 가능하지 않은가. 노동자들을 살리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구성할 수 있지 않은가. 나무를 살리자고 일회용품을 금지하는 법이 있듯 사람을 살리자는데 알고리즘 하나쯤 통제하지 못할까. 사채업자도 이자율을 제한받고, 욕망의 투전기 슬롯머신도 정해진 환수율로 알고리즘을 통제받는다. 자유시장 원리도, 상법도 난 모르겠다. 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이상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것 아닌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많아서 죽는다. 애초부터 죽을만큼 일해야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죽을만큼 일하다 죽는 것이다. 월수입 수백만원 노동귀족이라면, 일하다가 죽어버리는 귀족이 어디 있는가. 일이 많아 초주검이 된 필수노동자들에게 위험수당은 어불성설, 지금의 형국이라면 죽음에 이르는 택배노동을 당장 때려치울 휴업수당으로 써야 할 판이다. 하루 일을 하면 인간다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최저임금이 있듯이 표준배달료든 안전배달료든 선을 지키는 노동이 가능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위험과 과로를 대가로 시장지배력과 점유율을 높이고 결국 아무런 책임 없이 고스란히 이윤을 챙겨가도록 구성된 알고리즘과 플랫폼을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코로나가 아니라 탐욕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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