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50년 전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을 대신해 작업장 청소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해고됐다. 업주들 사이에 ‘위험분자’로 낙인 찍힌 전태일은 평화시장을 떠나 막노동을 했다. 평화시장 노동환경을 바꾸겠다는 마음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태일의 해고는 바보회 회원들에게 “나도 업주의 미움을 사 언젠가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바보회는 해산됐다. 50년 후 노동현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다섯 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잃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주였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송천한마음의집 얘기다. 이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은 지난 5월19일과 6월1일 각각 두 명·세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해고된 생활재활교사는 모두 노조 조합원들이다. 송천한마음의집에서 일하는 직원은 40여명이다. 조합원은 25명이다. 집단해고 반년도 안 돼 3명이 이탈했다. 지회는 지난 3월 시설장의 비위 의혹을 제기하고 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모두 그 뒤 일어난 일이다.

3명은 해고 반년 만에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해고기간 노동자들은 쿠팡이츠 배달 알바와 무대 설치 단기 알바를 하며 버텼다. 단비 같은 소식이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회사는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지노위 판단을 인용하더라도, 회사가 또 행정소송을 제기한다면 해고생활은 언제 끝날지 알 길이 없다.

“당당하게 살고 싶었어요.”

“힘들더라도 당당하게 살고 싶었어요. 복지시설 운영하는 요일별 일정표가 있는데 관리자는 기분에 따라 바꿨어요. 날씨가 좋으면 산행을 가는 식으로요. 직원 중 여성들은 생리통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따라가야 했어요. 결정적으로 분노가 터진 건 2018년 6월 회사가 시간외근무를 하지 말라고 하면서예요. 입주민들 저녁식사 후 양치지원·약 복용까지 시키면 30분은 항상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채준영(34) 공공운수노조 한마음지회장이 2년 전 일을 떠올렸다. 송천한마음의집 생활재활교사들은 2018년 6월 사측이 시간외근무수당을 신청하지 말 것을 요구한 데 반발해 처음 목소리를 모으고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던 채준영 지회장은 시설 내 비리와 부당행위 의혹에 관해 시설 운영법인인 ‘송천한마음의집’ 이사장과 면담을 요구했다가 그해 12월 해고를 통보받았다. 해고가 부당하다고 항의하자 바로 다음 날 징계는 감봉으로 축소됐다. 같은 일로 직원 5명도 감봉과 경고 조치를 받았다. 당시 경기지노위는 부당감봉 구제신청을 했던 직원 한 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 기업노조인 한마음노조를 설립해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회사는 교섭요구에 불응했고, 공모 절차 없이 새로운 원장을 임용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채준영 지회장은 새로운 원장 부임 첫날 인사위원회 위원에서 배제됐다. 인사위는 노동자의 징계 여부·수위를 결정하는 기구다.

“면담 요구하니 업무방해로 경찰 신고
전기차 충전한 직원은 전기 절도로 고소”


노조하기는 쉽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올해 1월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했다. 3월 시설장 비위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동자 처우개선도 요구했다.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회사는 노조간부와 조합원 다섯 명을 해고하면서 다양한 사유를 들이밀었다.

채 지회장 해고 사유 중 하나는 직장내 지정 장소 이외에서 흡연하고 시설장에게 고성을 지르고 협박했다는 것이 들어갔다. 2014년에 입사한 채 지회장은 시설에서 근무하는 동안 흡연에 관한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가 흡연했던 장소는 다른 동료들도 종종 이용하던 곳이었다. 지회는 “고성과 협박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사측이 면담 요구를 거부하면서 일부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었지만, 협박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사측은 채 지회장이 업무를 방해했다며 두 차례나 경찰에 신고했다. 김훈녕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명백히 사용자의 과도한 대응”이라며 “정당한 조합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조합원 최아무개씨는 시설 입주 장애인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사건은 지난해 4월 생활관 방역을 하면서 입주민 6명을 혼자 운동장으로 인솔하던 중 일어났다. 휠체어에 탑승한 입주민 한 명이 지나가던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따라가다 비탈에서 넘어졌다. 경찰은 최씨에게 업무상과실치상의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지난 2월 약식명령(벌금 50만원)을 내렸다. 최씨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시설은 전기차 충전을 위해 회사 전기를 세 차례 사용했다며 최씨를 절도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노조는 “전기 사용을 제재하는 행위가 없었다”고 부당함을 주장했다.

경기지노위는 지난달 21일 채준영 지회장과 최씨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같은달 27일 조합원 박아무개씨도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기각된 부당노동행위,
노동자의 고통은 계속된다”


노동자들의 해고생활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송천한마음의집 관계자는 “부당노동행위는 기각됐고, 부당해고는 인정됐지만 수용할 수 없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복직명령을 내려 경기지노위에 제기했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취하한 이아무개 조합원에 관해서는 “징계를 취소하고 다시 복직을 명령했다”면서도 “인사위원회에서 재징계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고자 중 1명은 구제신청이 기각됐다.

김훈녕 노무사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해고 사유로 지적한 것들은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들”이라며 “회사 전기를 사용하는 게 잘못됐다면 하지 마라고 주의를 주면 됐을 일인데 사용자가 증거를 모아 직접 고소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관계 인식이 척박한 사업장에서는 부당해고가 인정돼 복직해도 징계로 계속 괴롭힘을 이어 간다”며 “일종의 합법적인 부당노동행위가 유지되게 하는 건데, 노동위가 부당노동행위를 적극적으로 인정해 노사관계가 정상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준영 지회장은 현재 무대 설치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일감은 대중이 없다.

“2년 동안 싸우면서 느낀 게 되게 많아요. 기자회견도 하고 서울시장과 면담도 요구해 봤는데, 법이라는 게, 저희 같은 노동자들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요. 명확히 증거가 있고, 입증할 자료가 있는데도 관리·감독하는 행정기관은 저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더라고요.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비굴해지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건데…. 동료들은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이기도 하니까요. 고민이 많아요.”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