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근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몇 권 읽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시대착오적인 구절이 종종 보였지만, 글을 관통하는 자립을 향한 의지는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책으로 만난 그는 적어도 위선자가 아니었다.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시골에 은둔하면서 소설을 쓰고, 정원을 가꾸고, 개를 키우고, 낚시를 하며 살고 있다. 그에게 자립은 돈·명예·권력 등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하다. 진정한 강함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라는 걸 배웠다.

겐지와 같은 방식으로 자립하기는 쉽지 않다. 여차하면 가족까지 멀리하라는 그의 주장은 속세를 등진 종교인의 말에 가깝다. 자립을 향한 지독한 집착은 고독을 불러온다.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만남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자유와 얽매임, 고독과 어울림 사이의 끊임 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양 극단 중 한 곳에서 살아 가는 이도 일부 있겠으나, 대다수는 그러지 못한다. 지나치게 답답한 것도, 지나치게 불안한 것도 견디기 힘들다.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자립하는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이 바로 서야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노동을 준비하고 노동을 하면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그 기간은 한 인간의 성격·기호·가치관·인간관계 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다. 우리는 노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색을 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이 예속되면 삶도 예속될 수밖에 없다. 삶과 노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노동에 대한 겐지의 주장은 짐짓 극단적이다. 그는 당장 회사를 뛰쳐나오라고 말한다. 직장인은 자신의 목표가 아닌 조직의 목표를 위해 노동해야 하고, 상사의 눈치를 봄과 동시에 동료와 후배를 배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소진된다. 은퇴를 앞두고 남는 건 결국 ‘회사’다. 그래서 작가는 1인 자영업을, 농사를, 혹은 창작 활동을 하라고 소리친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며 노동해야만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주문이다. 모두가 홀로 노동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공감이 간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유토피아는 주식·부동산 대박이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사지 못하니 절망에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자아실현이니 직업윤리니 하는 것들은 창고 구석에 처박힌 골동품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매년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중노동·고용불안·저임금·각종 갑질이 노동자의 어깨를 짓누른다.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고, 그 경계에는 차별이 자리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어 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사후 50년이 지났건만 전태일이 우리 사회에 꾸준히 소환되는 이유가 짐작된다. 그가 보여준 희생과 연대, 불굴의 의지는 몇 번이고 되새길 만하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자립하는 노동을 일깨워 줬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그는 불합리한 노동 현실에 숨죽여 순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섰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의 외침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로운 노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우리의 노동 현실이 억압적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많은 노동자가 자립을 꿈꾸기 때문에 전태일은 앞으로 몇 번이고 더 소환될 것이다.

겐지가 말한 자립은 고독한 자립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침착해 들어가는 직시다. 이에 반해 전태일의 자립은 함께하는 자립이다. 타인과 연대해 불합리한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이다. 전자는 자유로우나 외로울 수 있고, 후자는 함께이나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전자는 초지일관되게 자립을 추구해야 하고, 후자는 모순을 극복하며 자립을 추구해야 한다. 둘 다 단단한 마음과 확고한 목표의식이 없으면 실천하기 힘들다. 삶과 노동에 있어 반드시 스스로가 주인이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자립은 죽을 때까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지 손안에 움켜쥘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자립하는 삶을 살고 싶다. 자립하는 노동을 원한다. 고독하든, 함께하든 뭐든 좋다. 예속이나 도피로 점철되지 않았으면 한다. 전태일의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요즘,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읽다가 떠오른 바람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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