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1일이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 노동자 2주기다. 그새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가시화했지만 우리는 작은 사업장일수록 산재에 취약하다는 비극을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오늘 목재 가공공장에서 숨진 청년노동자 김재순을 보고, 내일 다른 김재순들의 사고를 접할 것이다. 12월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주자는 취지로 노동자 건강권 단체와 활동가들이 워크숍을 연다. 이들의 제안을 네 차례에 걸쳐 들어본다.<편집자>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

박강운씨는 서울 세운상가 맞은편 대림상가에 있는 한 전자업체에서 일했다. 서너 명 일하는 작은 업체였다. 제일 기억에 남는 물질은 세척제로 사용한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이다. 냄새가 독했다. 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일했고, 독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선풍기를 사용했다. 세척 중에는 늘 눈이 시렸다. 오래 하면 눈이 맵고 따가워 종종 눈을 씻었다. 작업 땐 손에 낀 목장갑이 TCE에 젖었다. 시원한 느낌이 들었고, 장갑을 벗으면 손이 하얗게 불었다.

TCE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호흡뿐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도 흡수된다. 박강운씨가 기판을 세척하려고 물처럼 쓴 TCE는 대표 발암물질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이다. 흡입독성, 피부·눈 자극성 등 여러 건강문제를 일으키는 세척제 중 가장 해로운 물질 중 하나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삼성은 90년대 이후 TCE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체할 물질이 많아서다. 하지만 작은 사업장일수록 여전히 TCE를 세척제로 많이 사용한다.

박씨는 납을 녹이는 장비를 켜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2~3킬로그램짜리 납덩이를 녹여 두고 필요할 때마다 납땜했다. 많을 땐 몇 덩어리씩 녹였다. 녹인 납 용액에 기판을 담갔다 빼면 노란 금속 부분이 납으로 하얗게 덮였다. 녹은 납이 담긴 용액조는 차폐돼 있지 않았고, 용액조 위에는 부엌에서 흔히 보는 후드가 달려 있었다. 그래도 작업 때마다 납 냄새가 진동했다.

납은 조혈기계,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신장, 소화기계 등 다양한 건강문제를 유발하고, 발암성·생식세포 변이원성·생식독성을 모두 지난 대표 독성물질이다. 때문에 유럽연합은 납 사용을 금했다. 유럽에 수출하는 전자제품을 만드는 규모가 큰 회사는 납 대신 대체물질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하지만 국내 작은 사업장은 여전히 납을 많이 사용한다. 규모가 작을수록 납을 많이 쓰고, 납땜 방식도 납 노출에 취약하다.

납땜 전에는 납땜이 잘 되도록 돕는 물질인 플럭스를 바른다. 박씨의 작업장엔 별도 공간이 없어 작업장 바닥에 기판을 펼쳐 두고 그 위에 플럭스를 스프레이로 뿌렸다. 호흡에 가장 취약한 작업형태다. 작업 때마다 플럭스 냄새가 진동했다. 플럭스는 다양한 유기용제와 각종 고분자물질이 섞인 대표 유해물질이다. 박씨의 작업장엔 국소배기장치도, 간단한 마스크도 없었다.

박씨는 평일 10시간, 토요일 5~7시간 정도 일했다. 점심 20~30분을 제외하곤 휴식시간도 없었다. 유해 환경에서 긴 시간 쌓인 독성은 몸에 이상신호를 보냈다. 일 시작 2년쯤 후부터 늘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 됐다. 가래도 많이 생겼고, 감기도 자주 걸렸다. 8~9년쯤 됐을 땐 위궤양이 찾아왔다. 곧이어 숨쉬기 힘들어 병원에 가니 역류성 후두염과 식도염 진단이 나왔다. 자주 어지러웠고, 일 때문에 몸이 나빠진다는 의심이 들었다.

사장에게 TCE 세척을 안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사장은 계속하라고 했다. 병원 다니는 것도 눈치를 줬다. 근로감독관은 특수건강검진을 받게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근로감독관 연락을 받은 사장은 타박만 하고 끝내 검진을 해 주지 않았다. 결국 갈등 끝에 권고사직하고 그만뒀다. 검진만 해 줬어도 생계가 달린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큰 반도체 공장의 유해환경은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박씨가 일한 곳처럼 작은 전자업체도 반도체 공장처럼 독성화학물질을 많이 쓴다. 독성물질을 차폐되지 않은 채 사용하고, 보호장구도 변변치 않다. 오랜 시간 일하고, 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검진도 없는 노동안전보건의 사각지대다.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과 끊임없는 노동자 죽음이 더 작은 전자업체에선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너무 늦기 전에 드러나지 않은 위험을 드러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박강운씨가 일했던 전자업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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