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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여성들> 한국 여성노동운동가 1호 ‘강주룡’

기사승인 2002.01.15  09: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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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5월29일, 아침부터 평양 을밀대 아래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을밀대 지붕 위에는 한 여자가 무언가 열심히 호소를 하고 있었다. 바로평원고무공장의 노동자 강주룡, 임금인하를 반대하며 파업을 벌였다가 강제로쫓겨난 참이였다. 이대로 지고 만다면 전염병이 퍼지듯 전체 고무직공의임금인하가 시작될 것이 뻔하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다.

1901년 평북 강계에서 태어난 강주룡은 서간도에 가서 살다가 20살 되던 해에5살 연하의 최전빈과 결혼했다. “남편에게 사랑 받았다기보다는 남편을사랑했다”고 유쾌하게 회상하는 모습은 그의 열정적인 성품을 보여준다. 함께독립단에 들어가 활동하던 남편이 병을 얻어 죽자, 시집에서 강주룡을 살인자라고고발하는 바람에 유치장에 갇히는 수모도 겪는다. 24살 때 귀국, 평양에서고무직공을 하면서 부모와 어린 동생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당시 고무공장은 방직공장과 더불어 식민지 공업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발달하게 된 분야였다. 이들 공장의 눈부신 성장은 여성 노동력에 기반한것이었는데, 자본가들은 `값싸고 순종적인' 여공들을 통해 최대한 이윤을 확보하려했다. 턱없이 낮은 임금에 장시간 노동은 기본이었고, 남자 감독관의 욕설과 구타,성희롱은 끝이 없었다. 1929년 공황이 닥쳐오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공장주들은`산업합리화'를 내세워 노동자에 대한 임금인하, 정리해고, 노동시간 연장 따위를감행하였다. 참다 못한 평양의 노동자들은 1930년 대대적인 총파업을 벌였고, 그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평원고무공장 공장주는 다시 한번 임금인하를 시도했다.
강주룡의 고공농성으로 파업단은 새로운 힘을 얻는다. 사람들은 강주룡을`여류투사 강여사', `평양의 히로인'이라고 부르면서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보냈고, 파업단은 전열을 가다듬어 끝내 임금인하를 막아냈다. 그 과정에서 강주룡등 20명은 해고를 당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다음해 8월, `극심한신경쇠약과 소화불량'으로 고통받던 강주룡은 평양 서성리 빈민굴에서 숨을거둔다.

역사는 강주룡을 한국 최초의 여성 노동운동가로 기록한다. 그러나 한국노동운동의 역사가 여공들의 파업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발견은좀 늦은 듯 하다. 이미 1923년 경성고무공장 여공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식민지시대노동운동의 물꼬를 튼 여성 노동자들은 때마다 파업 현장을 지키면서 전체노동운동의 지평을 넓혀나왔기 때문이다.

박정애 ㅍ labortoday@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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