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연간 9만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 산업재해자 10명 중 7명은 3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예방사업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매일노동뉴스>는 산업안전공단노조(위원장 김용선)와 공동으로 산업안전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규모 사업장을 찾아 산재예방 현주소를 진단했다. 지난달 25일 인천에 위치한 4개 제조업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경영진과 노조 산업안전 담당자를 만났다. 그들로부터 정부의 소규모 사업장 산재예방정책에 대한 평가와 실태를 들어봤다.<편집자>



①사업주가 본 소규모 사업장 재해예방
②노동조합이 본 소규모 사업장 재해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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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조합은 대기업에 비해 운신의 폭이 좁다. 임금·단체협상에서도 산업안전 문제는 임금이나 고용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이날 우리는 화학업종의 노동조합 2곳을 방문했으나 공교롭게도 모두 외국계기업이다. 한국노총 화학노련 소속 사업장의 15%가 외투기업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사실 ‘우연’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안전 100% 보장 안 되면 공장가동 중단”

인천시 남구에 위치한 로디아실리카코리아는 침강 실리카와 규산소다를 생산하는 회사다. 고용인원은 79명이지만 상시 협력업체와 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모두 합치면 130여명 가량이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4조3교대로 운영되며 연간 매출은 597억여원 수준이다.

로디아실리카코리아는 80인 미만 사업장이지만 안전보건 수준은 국내 대기업만큼이나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본사의 경영방식이 국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 안전보건 교육이나 홍보가 아닌, 자체적인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중심으로 생산과정이 돌아간다.

“안전문제에 관해서는 정말 까다로워요. ‘기계를 꺼도 좋다. 안전이 우선이다’라는 의식이 철저하게 박혀있어요. 만약 이 달 생산량이 절반에 절반으로 뚝 떨어져도 안전문제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아무런 추궁이 오지 않을 정도죠.” 이대용 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로디아실리카코리아의 안전교육은 1년에 12시간으로 한달에 1회씩 실시한다. 특이한 점은 반복적인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심셉플러스’라는 기업 차원의 안전시스템이 그것인데,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시는 것을 하나의 공정이라고 하면 컵은 어떻게 잡고 어떤 각도로 입에 대고, 마시는 것까지 매뉴얼에 나와 있으며, 노동자들은 무조건 준수해야 하는 식이다.

근무교대 시에는 매일 20분 가량 이 매뉴얼을 크게 낭독한다.
그렇다보니 직원들의 안전조치는 걷거나 숨 쉬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있다. 이 위원장은 “이제는 안전모나 보안경·안전화를 신지 않으면 팬티를 안 입은 것처럼 허전한 기분이다”라며 웃었다.

이외에도 모든 작업이 각 팀장으로부터 허가가 나야 가능하도록 돼 있다. 고장 난 설비를 점검할 때도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예컨대 펌프 하나가 말썽을 일으키면 이를 발견한 사람이 안전보건 문제를 총괄하는 부서에 연락을 취한다. 우선 셧다운(공장가동이 완전 중단된 상태)조치를 취하고 해당 공정을 폐쇄한다. 어떤 이유로든 폐쇄한 공정에 출입해야 할 경우 담당자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외부에서 공사를 하러 건설노동자가 출입할 경우 안전장비가 안 갖춰져 있으면 퇴출된다. 대신 공사대금은 넉넉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화학·제조업에 적용되는 공정안전관리(PSM)제도나 자율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 18001)과 흡사하다. 김용선 산업안전공단노조 위원장은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수 기업이 비싼 돈을 들여 안전보건경영인증을 취득한 뒤 캐비넷 속에서 썪히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말했다.

산재 발생하면 24시간 내 프랑스의 그룹총수에게 보고

안전보건시스템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로디아실리카코리아에서도 산업재해는 발생했다. 지난 7월 생산공정의 한 직원이 3.2미터 높이에서 추락, 요추골절 사고가 발생했다.

“사실 좀 어처구니가 없는 사고였죠. 작업자가 바닥이 유리로 돼 있어 빛을 반사하니까 별로 높지 않겠거니 하고 뛰어내렸지 뭐예요.”

이 소식은, 사고 다음날 프랑스에 있는 끌라마디유 로디아 그룹 CEO의 보고서에 올라갔다. 로디아그룹은 모든 산업재해에 대해 24시간 내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하고 사후조치에 대한 결재를 받아야 한다. 사고조사도 사장을 비롯한 모든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직접 현장에 나와서 하고, 실시간으로 그룹 CEO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다.

또 지난 2004년에도 사고가 발생한 바 있는데 역시 작업과는 무관하게 비둘기를 쫓아내려다 터진 산재다. “바로 옆에 사료공장이 있어 비둘기가 많아요. 배설물이 제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폭음탄으로 쫓아내려고 했죠. 시범을 보이려던 직원이 폭음탄이 안 터지니까 불발원인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때 갑자기 터진거죠. 엄지 손가락에 파편이 튀어서 병원에 갔어요.”

이 회사는 100인 미만 사업장으로 법정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전종업원회의나 각 부서 대표가 모여 하는 미팅 등에서 설비의 미비점을 비롯한 모든 안전보건 관련 문제를 가장 먼저 논의하도록 돼 있다. 또 노사 대표와 각 부서장들이 모여 논의하는 별도의 회의기구도 구성돼 있다.

노조에서는 이와 별도로 안전보건 관련 연간 계획을 수립해 매달 수행하고 있다. 이달은 3교대 근무자의 건강관리 방법을 교육하는 게 과제다. 교대근무자의 건강관리법 소식지를 만들어 전체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이밖에도 무기화학제조업인만큼 유독성 화학물질을 많이 다루고 있어 별도의 점검팀을 꾸려 관리하고 있다. 안전순찰요원들이 매일 공장을 돌면서 미비한 부분을 찾아내고 보고한다.

노조가 나서자 작업환경 달라져

두 번째로 찾은 콘프로덕츠코리아는 미국계 다국적 곡물기업이다. 전세계에 80개 공장을 두고 있는데 국내 생산시설에서는 전분과 물엿을 생산하고 있다. 앞서 방문한 로디아실리카코리아의 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는 달랐다.

이 회사에서는 2004년 1명·2005년 2명·2006년 1명 등 줄줄이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사업주가 안전보건 문제를 방치하자 노조가 먼저 나섰다. 주로 추락과 전도사고가 많았는데 안전대가 설치돼 있지 않고,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노조는 매달 1회 개최를 원칙으로 공장안전위원회를 사측에 제안했고 노조 자체적인 안전순찰활동을 벌였다. 노조의 산업안전부장인 김용균씨는 올해 안전기사 자격증을 따고 ‘안전트레이너’로서 활동하고 있다.

윤영섭 노조 부위원장은 “산업재해의 피해자는 항상 노동자”라며 “조합원들이 다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 안전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시작했고 2006년 투자계획에서 안전분야가 1순위가 됐다. 미국 본사에서도 안전관련 예산을 별도로 배정받아 매년 2억원 가량을 투입했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산업재해가 사라졌다.

윤 부위원장은 “안전한 작업환경을 위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설비문제는 해결됐지만 직원들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이 43세로 건강관리가 꼭 필요한데 그럴 만한 여유는 없다. 그래서 산업보건 간호사를 매 분기마다 공장으로 불러 검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산업의학의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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