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피해가 집중된 안산 단원고는 반월공단으로 익숙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인접해 있다. 1978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수도권 인구를 분산한다는 명목으로 서울과 경기도의 중소기업과 공해업체들을 안산시 단원구 일대로 몰아넣었다. 지금도 소규모 전자제품 조립업체와 화학업체·염색업체들이 공장의 불빛을 밝히고 있다.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업무상재해와 업무상질병의 81.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됐다. 사업체수를 기준으로 하면 161만여곳에 이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병을 얻었다. 또 다른 모습의 세월호인 셈이다.

외환위기 시절 산업안전 분야 대대적 규제완화

97년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산업안전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이뤄지면서 50인 미만 사업장들은 산업재해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조기홍 한국노총 안전보건실장은 “당시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무 사업장이 30인 이상에서 50인 이상으로 줄어들면서 산재 사각지대가 넓어졌다”며 “산재통계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건수가 높은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노동자 안전관리를 '규제'로 본 김영삼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가 결국 중소·영세기업의 주요한 산재예방 수단을 없애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사업주가 산재예방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노사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 법에서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된다.

노동자들의 상태도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임시·일용직과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저출산과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동력이 고령화되고,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높아졌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도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불법파견과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반월공단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단순·반복 작업에만 투입되는 비숙련 인력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산재에 취약한 계층이다. 조기홍 실장은 “이런 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안전수칙은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며 “생계형 노동에 나선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안전과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리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산재보험예방사업 국고지원금 집행률 '0.1%'

어떤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집행의지를 보려면 두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 예산과 인원을 얼마나 투입했느냐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조는 “국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의 범위에서 보험사업에 드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95조는 “정부는 산업재해 예방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회계연도마다 기금지출예산 총액의 100분의 3 범위에서 정부 출연금으로 세출예산에 계상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매년 일반회계에서 그해 산재보험기금 지출예산 총액의 3% 이내에 해당하는 금액을 전입금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해당 조항은 2006년 노사정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발전위원회의 합의사항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까.

올해 고용노동부의 산재보험기금 지출예산은 4조7천155억원이다. 지출예산의 3%는 1천414억6천500만원이다. 정부는 과연 전입금을 얼마나 내놓았을까.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4 대한민국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보험 및 예방기금’ 항목에 책정된 금액은 118억8천540만원이다. 국고지원 집행률이 3%는 고사하고 0.25%에 불과하다. 산재도 산재지만, 정부가 노사정 대화의 성과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정부 전입금의 세부내역을 보면 더욱 실망스럽다. 정부 내부지출(3억원)과 여유자금(68억6천990만원)을 제외한 순수 사업비와 기금운영비는 47억1천550만원으로 줄어든다. 집행률을 따져 보면 0.1%라는 황당한 숫자를 만나게 된다.

산업안전 영역에서도 기업에 대한 정부의 퍼주기 식 특혜지원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공개한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최근 5년간 무려 955억여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만 183억원을 덜 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최근 두 달 사이 하청노동자 5명(계열사 포함 8명)이 중대재해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1974년 창사 이래 무려 388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다. 보다 못한 노동계가 조선소 인근 정형외과를 찾아다니며 찾아낸 산재은폐건수는 200건을 웃돈다.

은 의원은 “현대중공업이 산재예방 노력은 하지 않고 공상으로 처리해 산재은폐에 골몰했다는 뜻”이라며 “이러니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기업에게 정부는 수백억원의 보험료를 깎아 준 것이다.

재벌기업에 후하고 영세기업에 박한 정부

정작 정부의 지원을 절실하게 바라는 50인 미만 사업장들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만만치 않은 난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장 설비개선비 지원 프로그램이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참여신청→신용평가→대상사업장 선정→사업주교육→투자컨설팅→자금신청→보조금 지원대상자 결정심사→인정요건 개선→투자완료확인요청→투자완료확인→보조금 지급 및 클린인정’이라는 11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8천888개 사업장이 클린사업장으로 인정받았다. 업체당 1천113만원꼴로 지원금이 돌아갔다.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감면받은 보험료 183억원은 50인 미만 사업장 1천271곳의 작업환경을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런 계산도 가능하다. 노동부와 공단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예방을 위해 올해 1월부터 산재예방요율제를 시행 중이다. 정부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노동부는 50인 미만 제조업체 사업주가 공단으로부터 ‘위험성평가 인정’을 받거나 ‘사업주교육’을 이수한 경우 해당 사업장의 산재보험요율을 10~20% 감면해 준다.

다만 업종별·규모별로 보험료 감면율이 다르다. 감면율이 비교적 높은 기타금속제품제조업 또는 금속가공업(평균근로자 26명 기준) 업체의 사업주가 산재예방요율제에 참여하면 3년간 2천226만원의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를 대입하면, 소규모업체 2천496곳에 혜택을 나눠 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산업안전감독관 절대 부족 … "감독하다 산재 당하겠네"

다음은 인원이다. 노동부에 소속된 산업안전감독관은 300명이 조금 넘는다. 중간관리자를 제외하고 실제 산업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은 250여명이다. 지난해 화학업체 폭발사고 같은 중대재해가 잇따른 뒤 29명이 충원됐지만 일손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산재가 발생한 50인 미만 사업장 161만여곳을 250명이 감독하려면, 한 명당 6천500여곳을 맡아야 한다. 제대로 된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초 클린사업장 제도나 산재예방요율제는 소규모 업체의 자율안전관리를 유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정부가 정한 요건을 충실히 갖춘 기업은 정부로부터 작업장 개선지원금이나 산재보험료 감면 같은 인센티브를 받는다.

이러한 제도가 성공하려면 사업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서성모 고용노동부공무원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산업안전감독관이나 공단의 직원들이 부지런히 사업주들을 만나고 설득해야 제도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지금의 인원 갖고는 쉽지 않은 얘기”라며 “지난해 계속된 중대재해 사고와 올해 세월호 참사로 최근 안전감독관들에게 떨어진 업무하중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안전감독관들은 “산재 감독을 나간 감독관이 산재를 당하겠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전감독관은 “감독관 1명당 80곳에 달하는 정기감독 사업체와 70곳에 육박하는 불시점검 업체, 수시로 방문하는 전담관리제 사업장 40곳 정도를 관리하고 있다”며 “현장에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면 각종 보고서가 기다리고 있어 야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통계가 엉터리인데 제대로 된 정책 나올까"

규제완화와 예산·인력의 부족 외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가 매년 내놓는 산재통계가 미덥지 못하다는 얘기다. 통계가 엉터리인데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정부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승인된 사례만을 통계에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가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넘어야 하는 높은 문턱, 사업주들의 산재은폐 실상을 떠올린다면 정부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사망재해율이 3배 가까이 높은데도 정작 사고·질병재해율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일하다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산재통계는 이 같은 일반의 상식을 거부한다. 재해율이 수년째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 집계방식의 타당성과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통계는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은폐한 산재사건 외에도 교사·군인처럼 직역연금에서 재해보상을 받는 경우나 산재보험 가입범위에 포함되지 못한 특수고용직의 재해현황을 보여 주지 못한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산업환경과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정부 통계는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에게 실효성 있는 안전보건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비판했다.

이달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부와 한국노총이 만났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에 대한 지원책을 논의하고,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한국노총은 97년 이후 완화된 안전보건 규제를 원상태로 되돌리고, 노동자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규제완화를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비인간적인 파괴행위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당장 30인 이상 사업장까지 안전·보건담당자 선임의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사업장 안에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능동적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주장이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선원의 장내방송을 따르다 참변을 당한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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