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노사정 기본합의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사용규제 합리화(완화)를 공언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23일 오후 본위원회를 열어 기본합의를 시도할 예정인 가운데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잡아 놓고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노사정위 기본합의도 안 했는데, 버젓이 정부계획에 포함

정부는 22일 오전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전성 제고를 위한 종합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고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임금·근로시간·근로계약 등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제고하고 파견·기간제 근로자 사용에 대한 규제를 합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상시·지속업무에 대한 정규직 전환 촉진 △고용형태별 특성에 따른 근로조건 개선 및 차별 완화 △사회보험·최저임금·직업훈련 지원 등 사회안전망 강화 계획도 내놓았다. 통상임금·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노동시장 현안에 대한 입법화 추진계획도 경제정책방향에 포함시켰다.

당초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가 논의 중인 만큼 이날 발표되는 경제정책방향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편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만 담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정부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노사정위가 지금까지 논의한 합의안 초안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특히 근로계약 유연화 방침은 저성과자에 대한 근로조건 조정·해고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정부 속내와 맞닿아 있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내용이다.

기간제 사용 규제개혁 역시 사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노사정위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가 삭제를 요구한 부분이다. 파견근로 대상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도 노동계가 동의하지 않고 있다.

노사정위는 23일 오후 본위원회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기본합의를 이끌어 낼 예정이다. 그럼에도 노사정위 논의 기간 내내 첨예한 쟁점이 됐던 부분을 정부가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덜컥 포함시킨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사정위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우리가 반대한 계획을 버젓이 경제정책방향에 수록했다”며 “명백한 약속 위반이자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유연화뿐 아니라 (재계가 반대하는) 안정성 제고를 위한 내용도 함께 포함시켰다”며 “일방 추진이 아니라 노사정위에서 기본합의가 이뤄지면 추후 논의를 이어 가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23일 노사정위 기본합의 예정 … 다음주 초 비정규직 종합대책 발표

노동부는 이날 노사정위에서 기본방향에 대한 합의문이 도출되면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주부터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에서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다음주 초에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노사정위 논의와 대책 발표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정부가 발표할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기간제와 파견근로 사용에 대한 규제완화와 차별개선에 관한 세부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임무송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포함될 내용은 정부 계획이 아니라 향후 노사정 논의를 위한 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봐 달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정한 일정대로 노사정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노사정위가 23일 본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시한 대로 최종합의 시한을 내년 3월까지로 정하면 정부쪽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날 오전 열린 한국노총 회원조합대표자회의에서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기본합의문 서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노동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노사정위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합의한다고 해서 그 많은 법개정을 다 이뤄 낼 가능성은 적다”고 지적했다. 노 소장은 “노동시장 구조개편은 단순히 노사가 절반씩 양보해서 이뤄 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노동시장 안정성을 먼저 담보한 뒤 기능유연화 논의로 이어지도록 로드맵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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