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전과 그 후에 달라진 풍경을 전하고자 한다. 이 공장은 연장근로를 많이 하는 곳이다. 연장근로는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4일을 한다. 아침 8시 반부터 일하기 시작하면 저녁 9시에 끝난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13시간이다. 게다가 주말에는 특근도 한다. 전형적인 장시간 노동 공장이다.

그런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 연장근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유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돈보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삶의 질을 높여 보려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연장근로 선택권은 노동자에게 있다. 회사 관리자도 함부로 통제할 수 없다. 본인이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연장근로를 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차츰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공장 운영에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는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생산품을 만든다. 한 공정에서 몇 명만 빠지면 전체 공정을 멈춰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회사 관리자는 날마다 연장근로자를 확보하느라 전쟁을 치렀다. 현장 관리자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연장근로자를 확인하는 것이다. 직원 중에 상을 당한 경우가 생기는 날에는 비상이 걸린다. 이런 날은 관리직까지 생산라인에 투입된다.

그래도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날에는 다른 라인에서 사람을 빌려 와야 한다. 과거에는 연장근로 참여자가 부족하면 생산속도를 늦춰서라도 공장을 가동했는데 지금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연장근로 참여자가 부족하면 아예 가동을 중단시켜 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장근로를 안 하면 회사도 손해지만, 노동자도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무형의 방법으로 조직을 통제하는 기법이다. 연장근로를 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집단적인 압력을 받게 된다. 실제 회사는 "너희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회사의 이런 수법에도 연장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는 계획까지 세웠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임금협상을 끝낸 다음날부터 공장 가동률이 100%를 기록하고 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서부터다. 노사가 임금협상을 하면서 상여금 전체를 통상임금에 적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자 연장근로수당이 60% 정도 올랐다. 보통 50만원 정도 받던 연장근로수당이 8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월차 사용도 현격히 줄었다. 월차를 한 번 쓰면 30만원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연장근로수당·심야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에다 월차수당까지 합치면 연간 평균임금이 700만원 정도 올랐다. 공장 노동자들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7천만원이다.

통상임금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노동자들은 연장근로수당의 굴에서 빠져나오려다 도로 굴 안에 갇힌 형국이 됐다. 아마도 회사는 당분간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사례가 뼈아픈 것은 임금체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단지 임금인상 열매만 따먹었다는 데 있다. 통상임금 논란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벌리는 결과만 초래한 셈이다.

노동계가 대법원 판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동운동이 경제조합주의로 흐르면서 기업별 노사관계에 매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노동계는 '노동계가 주도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

현행 임금체계를 유지하면서 통상임금만 올리면 우리 사회 양극화 현상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이 이를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칫 역사의 공범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총연맹 단위는 총파업을 넘어 정부와 사용자단체 주도로 진행되는 수세적인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공세로 전환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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