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1년여 전 어느 날, Y형의 비보가 전해졌다. 고객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고객지원을 하다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허겁지겁 달려간 장례식장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침통하게 앉아 있었고 유난히 사람 좋았던 형수는 눈물 바람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서울의 작은 전력노조 지부에서 함께 노동조합을 시작했고 새로운 노조활동을 해 보자며 의기투합했던 Y형이다. 나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고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으면서도 노조활동을 사명으로, 보람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감수했던 Y형이었다. 이제 살 만해졌다며 2년 뒤 퇴직 후에는 이것저것 마음 가는 일들을 해 보겠노라며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그 말들을 전부 뒤로한 채 먼 길을 떠나 버린 것이다. 노환으로 몸져누우신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청춘을 대신해 키워 온 자식들, 무엇보다 함께 고생하며 삶을 일궈 왔던 소중한 아내에게 단 한마디 말조차 남기지 못한 채 황망하게 이승을 떠나 버린 Y형. 전력산업의 일선을 함께 지켜 왔던 동료들은 그저 망연자실, 술잔을 기울이며 자책하고 있었다.

“우리 일이 아니었는데…. 안 해도 될 일이었는데….”

사고 경위를 듣고 나니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고객인 국립공원측에서 쓰러진 나무가 전선에 걸쳤다며 한전에 확인을 요청했다. 현장을 확인한 다른 동료들은 한전에서는 직접 나무를 자를 수는 없고 입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렸다고 한다. 그날 오후에 수목전지에 입회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Y형과 동료들이 현장을 방문했으나, 장비가 없다며 직접 해 줄 수 없겠냐는 거듭된 고객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전력선에 걸쳐진 나무를 자르다 갑작스럽게 나무가 덮치면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Y형을 죽음으로 이끌었는가. 모르는 이들은 한쪽에서 ‘대충 넘어가지 뭘 그렇게 내 일처럼 달려들었냐’며 ‘오지랖 넓은’ Y형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해 왔던 Y형의 성정으로 볼 때 고객의 요청을 절대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더군다나 '무한감동'을 요구받고 있는 공기업 직원이고 보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Y형뿐만이 아니었다. 대다수 전력노동자가 그랬다. 전력산업 현장은 항상 가늠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노동자들은 그 위험에 맞서 몸을 사리기보다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전기를 만들어 보내 주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노동자의 ‘사명’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에는 안전한 노동을 위한 여건 또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고장을 한시라도 빨리 수습하기 위해 제대로 된 안전장구도 없이 고압선 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희생당한 노동자들이 무수히 많았다. 좀 살 만해지고 안전에 대한 인식이나 안전장구가 확충된 지금에 와서도 전력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의 무게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위험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른바 ‘성과경쟁’과 ‘고객만족’이 주는 압박 이면에 노동자 안전과 생명 따위는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다. 정전으로 인한 고객의 불편은 고압선을 정지시키지 않고 작업을 해야 하는 소위 활선작업으로 이어지면서 위험이 커졌고, 자연재해로 인한 설비피해는 '즉시 복구'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력산업 100여년, 그동안 전력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1961년 출범한 한전 체제에서만 5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생명을 잃었을 만큼 위험하고 힘든 노동현장이다. 그 노동의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성과경쟁을 앞세운 이윤과 효율성이 아니다. 보다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고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고 역할이다.

스위치만 올리면 밝은 불빛이 켜지는 세상, 그리고 온갖 문명의 이기들로 불편함이 없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들어 왔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전력노동자들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력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결코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에 촉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재해 1위의 불명예는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조차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성과경쟁과 민영화에 골몰할 때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보편적 서비스를 누릴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 공공서비스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고용을 위해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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