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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마장 마필관리사는 왜 목숨을 끊었나

기사승인 2017.05.3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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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적 고용불안 속 묻지마 성과금 분배, 인격모독까지 당해”

   
▲ 윤자은 기자

지난 26일 오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열린 경마대회에서 경주마 한 마리가 출발 직전 앞발을 치켜들었다. 자칫하면 기수가 낙마하거나 말이 뒤로 넘어갈 상황이었다. 경주가 시작되면 마필관리사는 무조건 고삐를 놓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고삐를 당겼다가 놓는 사이 경주마 출발시간이 몇 초 늦었다.

그날 밤 마필관리사 박경근씨는 아내에게 전화로 “조교사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새벽 마방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아내와 열 살 난 쌍둥이 아들을 남겨 두고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주검과 함께 유서가 발견됐다. 종이에는 단 세 줄만 적혀 있었다. “X같은 마사회”라고 쓴 첫 줄 외에 나머지 두 줄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동료 마필관리사들은 “경주 출발점에서 말이 앞발을 드는 일이 종종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출발과 동시에 고삐를 놓아야 한다”며 “조교사뿐만 아니라 마사회와 마주에게도 질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족 “개 취급 당한다고 말해”

지난 27일 오후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의 한 장례식장에서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위원장 양정찬)의 조합원 간담회가 열렸다. 박씨의 동료 마필관리사 40여명이 참석했다. 유가족이 된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말에 애착이 있어서 말이 이상 있을까 봐 집에도 못 가고 마방에서 밤새워 일하는 것을 보며 천직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언젠가부터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 개 취급을 당해서 그만두겠다'는 아들에게 쉰 살 먹을 때까지만 경마장에 있으라고 얘기했다”고 흐느꼈다. 고인의 어머니는 동료 마필관리사들에게 “우리 아들의 억울함을 관리사분들이 꼭 좀 풀어 달라”며 “명예회복을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장례 절차를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에 위임했다.

   
 

“권한 휘두르고 책임은 지지 않는 마사회”

마필관리사는 1993년 개인마주제 시행 이전에는 마사회 소속이었다. 개인마주제 시행 이후 마주는 조교사에게 경주마를 위탁하고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그림 참조> 마필관리사는 마사회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처우와 업무에서 사실상 마사회 통제 하에 있지만 직접적인 고용계약을 맺지 않는다. 마필관리사의 고용주는 조교사다.

마사회는 경마장 시설의 유지관리, 마주등록과 조교사 기수 면허 부여, 상금지급 등 경마시행 전반을 주관한다. 연간·분기별 경주계획을 발표하고 출마등록, 부담중량 발표, 출마투표, 출주마 확정 시행관리와 상금제도를 주도적으로 운영해 시행주체(조교사·마필관리사·기수)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양정찬 위원장은 “마사회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라며 “적은 비용으로 경마장을 운영하려는 마사회 행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2004년 마필관리사 일을 시작했다. 2008년 노조에 가입했고 2012년부터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노조에 따르면 박경근씨가 사망한 다음날 일부 마방 조교사들이 임금체계와 관련된 설명을 진행하고 확인서명을 강요했다고 한다. 일부 마필관리사는 “상기 본인은 2017년도 임금체계에 관한 설명을 사업주에게 직접 들었음을 확인한다”는 문구가 있는 ‘관리사 임금체계 설명 확인서’에 이름을 쓰고 서명했다.

성과급 지급은 조교사 마음대로

13년 동안 마필관리사로 일한 A씨는 “어느 조교사 밑에서 일을 하든 기본급과 야간경마수당·당직수당은 받을 수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성과급은 조교사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다”며 “조교사 말 한마디에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성과급 배분에 문제가 있어도, 기본급만 주더라도 감히 조교사에게 항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인권유린을 당해도 항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위원장 신동원)에 따르면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서울경마장은 조교사협회와 마필관리사노조가 단체협약을 맺고 노동조건을 협의한다. 사용자인 협회와 근로계약을 맺기 때문에 고용도 안정적이다. 그런데 부산경남경마장은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개별 근로계약을 맺는다. 노조 관계자는 “제주경마장도 서울경마장과 같은 시스템이었는데 지난해 말 조교사협회가 해체하고, 개별 근로계약을 맺는 부산경남경마장 시스템으로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의 상급단체인 공공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마사회의 공정경쟁 정책에 따른 비인간적인 노동강도 강화 시도가 오늘의 비극을 불러왔다”며 “이번 사건은 부산경남경마장뿐만 아니라 서울·제주 등 모든 경마장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고 지적했다. 연맹은 정부여당과 마사회가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마필관리사 처우 개선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마사회가 직접고용하라”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는 마사회측에 △마사회 직접고용 △고용·임금체계 개선 △산재발생률 감소를 위해 노조와 협의 △재발방지 약속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노조 요구안을 검토하겠지만 경마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독특한 운영구조는 경마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지역본부는 29일 오전 부산 범일동 마사회 부산 동구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사회는 연 매출이 7조7천억원을 넘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81.9%인 악명 높은 공기업”이라며 “마사회는 특이한 고용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마필관리사를 포함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화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배일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박경근 조합원은 전적으로 한국마사회가 자행해 온 착취구조 속에서 희생된 것"이라며 "마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윤자은 bory@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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