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지난 다섯 달을 돌아보자.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메시지를 발표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북남 관계를 개선하자”고 했다. 2월10일 김여정이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했다. 3월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을 만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고, 3월9일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를 접견했다. 3월26일 김정은은 시진핑을 만나 “남조선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 노력에 화답해 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해 단계적 동시적 조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3월29일 남북은 정상회담을 4월27일 여는 데 합의했다.

4월 초 남한 예술단이 평양에 갔고, 폼페이오가 김정은을 만났다. 4월20일 조선노동당은 “이제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 발사 시험도 필요 없게 됐다”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선언했다.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수뇌가 만나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5월1일 남한은 대북 확성기를 철거했다. 5월5일 북한은 ‘평양시간’을 폐지했다. 5월7일과 8일 김정은은 시진핑을 다시 만나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유관 각국이 단계별로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하자”며 “한반도 비핵화와 영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날 밤 폼페이오는 평양행 비행기 안에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고, “단계적 방식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폼페이오는 김정은과 다시 만났다. 5월10일 새벽 트럼프는 북한이 풀어 준 한국계 미국인들을 직접 환영했고, 정상회담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고 트위터를 날렸다.

이러한 노력에도 하와이에서 날아온 최신예 전투기 F-22 랩터 8대가 광주기지에 배치됐다. 볼턴 같은 극우들은 북한 정권 붕괴와 김정은 제거를 뜻하는 ‘리비아 모델’로 북한을 자극했다. 이에 5월6일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5월11일 한미연합훈련 맥스선더가 사상 최대 규모로 시작됐고, 전투기가 100대 이상 참여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5월16일 남북고위급회담 중단을 선언했다. 김계관 외무성 1부상 명의로 “핵 포기만 강요하려 든다면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5월21일 펜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은 우리가 합의하지 않는다면 오직 리비아 모델처럼 끝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위협했다.

이상기류 속에서 5월22일 문대통령과 만난 트럼프는 조건이 충족 안 되면 회담을 안 하겠다고 했다. 5월24일 오전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명의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 맞받으면서도, 같은날 오후엔 예정대로 풍계리 핵시험장을 폭파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회담을 하기엔 부적절한 때라 느낀다”고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잘 굴러가던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 멈춰 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 비핵화 방법이다.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절차를 원했지만 미국은 “한꺼번에(all in one)”를 원했다. 둘째, 북한 체제 보장이다. 북미협상 중에도 미국의 정치·군사적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북한으로선 경제제재 완화, 평화협정 체결, 국교 정상화가 제대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셋째, 판문점선언 준수다. 미국에 얽매여 있고, 극우 야당이 존재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입장에선 어려운 일이지만, 남한 내부 논의가 시급한 문제다.

트럼프는 “마음이 바뀌면 전화나 편지를 하라”고 썼다. 북한은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미 중 누가 먼저 비둘기를 날릴 것인가. 남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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