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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문송면·원진노동자 30주기 산재 피해자 증언대회] "왜 일하다 죽어야 했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다"

기사승인 2018.07.18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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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 인정까지 험난한 여정 …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30주기를 맞아 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산업재해피해자 증언대회 및 노동안전보건 과제 대토론회에서 삼성LCD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씨가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올해는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30주기가 되는 해다. 30년간 노동자 안전보건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송면·원진레이온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산재 피해자 증언대회·노동안전보건과제 대토론회’를 열었다. 산재 피해자와 유족들이 증언자로 나섰다. 증언은 곧잘 끊겼다. 울음을 삼켜야 했기 때문이다. 30년간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목도하는 자리였다.

울음에 끊긴 산재 피해자 증언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눈물이 나요.”

30년 전 원진레이온에서 일했던 장옥희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지금도 몸이 너무 아프다”며 “잘 걸어 다녀 건강하게 보이지만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인조비단을 만들었던 원진레이온은 이황화탄소를 원료로 사용했다. 이황화탄소에 만성노출이 되면 중추신경장해를 일으킨다. 무력감과 온몸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불안증상이 나타난다. 원진레이온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무려 1천여명이다.

노동자들은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길을 막아서는 투쟁도 기획했다. 장옥희씨는 “진짜 그렇게 살라고 하면 그 누구도 살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 산재 인정투쟁을 회고했다. 그는 “지금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요구한 것을 얻어 냈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원진레이온 투쟁 이후 산재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녹색병원이 만들어지고 직업환경전문의 제도가 생겨났다. 산업안전보건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가 처한 안전보건 현실은 아직도 30년 전을 맴돈다.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만 봐도 그렇다.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삼성에서 열심히 일했다는 것”

삼성전자 LCD사업부에서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일하다 27살이던 2005년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씨. 그는 혼자 걸을 수도, 혼자 서 있을 수도 없다. 혼자 밥 먹는 것도,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렵다. 입을 열고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한씨는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삼성에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는 것뿐”이라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실어 말했다.

“삼성전자에 들어가서 어떤 물질을 썼는지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것만 알았더라도 제 몸을 관리했겠죠. 삼성은 엉뚱한 교육만 했어요. 극기훈련 같은 거나 시키고. 그게 뭡니까. 대기업이 그래도 되나요? 저 같은 사람 나오지 않게 잘했어야죠.”

한씨는 감정이 격해지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혜경이가 삼성에 입사하고 석 달 만에 생리가 들쭉날쭉해졌을 때도,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도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설마 직업병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반올림을 만난 뒤 삼성에서 일하다 걸린 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2009년 산재신청을 했죠. 그랬더니 정부가 우리보고 직업병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하더군요. 혜경이가 퇴사한 지 8년이나 지났고, 근무했던 공장은 이미 폐쇄됐는데 말이죠.”

삼성에서 "10억원을 줄 테니 반올림과 연락을 끊고 지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김씨는 “일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가 치료받기 위해 싸워야 하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고 한탄했다. 그는 “문송면군이 산재인정을 받기까지 엄청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잘 안다”며 “시체에서 썩은 살이 떨어질 때까지 짊어지고 다녔다고 들었는데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지금도 너무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삼성 본관 앞에서 반올림이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오늘로 1천15일째”라며 “한 생명, 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대가 올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아버지 자살소식, 슬픔보다 분노를 느껴야 했다”

“아버지는 지난해 8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집배원의 생명이라는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치셨죠. 집배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내리거나 세울 때 왼쪽 다리를 지렛대로 써요. 그런데 제대로 된 공상처리도 받지 못하고 병가를 내면서 치료를 받았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회사에서 출근을 재촉하는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리셨죠. 결국 추석을 앞두고 특별배송이 시작되기 전에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기로 하셨는데….”

지난해 9월5일. “두렵다. 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 하네. 가족들 미안해”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길연 집배원(서광주우체국)의 아들 동하씨는 아버지의 죽음을 경찰을 통해 들었다.

“아버지가 직장 때문에 홀로 사셨는데 어느날 경찰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아버지가 연락이 안 되니까 집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번개탄을 피워 놓고 자살하셨다고 하더군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라 ‘아! 결국엔 썩어빠진 우체국이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싹 엎어 버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아버지에게 출근을 종용한 사람들, 심지어 우정노조 관계자도 있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요.”

동하씨는 “우체국에서는 집배원들이 과로를 호소하면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하니 참아라’고만 했다”며 “집배원들은 사비를 털어 인력을 모집해 선거철 공보물을 배달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후배들 야근 없애고 싶다던 동생 유언 지키겠다”

장향미씨에게 올해 1월3일은 인생의 전환점이다. 그날 동생 민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순씨는 일명 공단기(공무원단기학교)로 유명한 인터넷 강의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였다. IT업계는 야근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은 상상초월이었다. 민순씨는 2년8개월 동안 주 1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게 46주나 됐다. 우울증과 야근, 계속되는 직장상사의 괴롭힘으로 공황장해 증상이 악화했다.

“동생은 평일에는 야근에 치이고 주말에는 시험장에 나가 수험생들에게 회사 홍보물을 나눠 주는 이벤트에 동원됐어요. 회사는 동생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벤트에 불참하면 인사고과에 20%가 무조건 반영되기 때문에 안 나갈 수 없었습니다.”

장향미씨가 동생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회사 동료 30여명을 직접 만나 들은 내용이다. 그가 만난 에스티유니타스 직원들은 동생처럼 아팠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이 회사가 아니면 다른 회사에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느꼈다. 동생과 비슷한 우울증상을 앓고 있었다. 장씨는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동생이 죽기 한 달 전이었어요. 동생이 일이 많아 힘들고 직장상사한테 화가 난다고 대성통곡을 했어요. 원래 내색을 안 하는 아이였거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에스티유니타스가 어떤 회사인지. 그래서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에 근로감독을 청원했죠. 그때가 12월이었어요. 그런데 강남지청 근로감독관이 하는 말이 ‘올해 나가야 할 근로감독 분량이 다 찼으니 내년 2월에 다른 업체랑 묶어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근로감독기관은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동생의 죽음을 방관한 거죠. 올해 4월 언론에 동생 죽음이 알려지니까 그때서야 강남지청이 에스티유니타스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어요.”

장씨는 “동생이 ‘후배들을 위해 야근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열흘 뒤 목숨을 끊었다”며 “동생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에스티유니타스는 이달 12일 오후 고 장민순씨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법정근로시간을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산재사망 줄지 않아 … 직장 권력관계 바꿔야"

30년간 산재사망사고는 줄었을까. 적어도 산재보상 통계상으로는 감소했다.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망자를 보면 88년 3.35명에서 2016년 0.5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날 노동안전보건 과제를 발제한 백도명 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는 “일반인구 중 사고사망이 줄어든 것”이라며 “일반인구 사고사망률에서 자살을 제외하면 산재사망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년 전과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산재사망사고가 감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산업재해를 시혜적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문제의 결과가 있으면 원인을 해결해야 하는데 문제를 제기한 쪽에 (산재보상이라는) 시혜를 베풀고 끝내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하청노동자나 현장실습생처럼 취약한 계층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위험노출 관계는 권력관계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직장 권력관계를 바꿔야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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