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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 1주년 앞둔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쉼터와 비정규직 운동 베이스캠프, 두 마리 토끼 잡아야죠"

기사승인 2018.08.06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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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식구들이 한남상운지회 소속 버스노동자를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꿀밥'이라고 부른다. 더위에 힘내라고 삼계탕이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꿀잠 이사장, 신부)가 건배사를 했다.<정기훈기자>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1층 식당이 오전부터 시끌벅적했다. 꿀잠 이사장인 조현철 신부가 황기·엄나무·파·마늘을 듬뿍 넣어 뽀얗게 끓여 낸 토종닭을 접시에 담아 차례차례 내오자 작은 탄성이 터졌다.

"유기농 조선닭이니까 맛있게 많이 드세요."

'셰프' 박행란씨가 채 식지 않아 뜨거운 김이 나는 백숙을 손으로 쭉쭉 찢으며 말했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살 한 점을 소금에 찍어 입에 넣었다. "쫄깃쫄깃 꿀맛이네."

이날 꿀잠이 지난달부터 시작한 '꿀밥' 두 번째 행사가 열렸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점심 혹은 저녁 한 끼를 나누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밥상 나눔' 자리다. 지난달 첫 번째 꿀밥을 먹은 손님들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이었다.

두 번째 초대 손님은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 한남상운지회 조합원들. 서울 금천구 마을버스 노동자들인 이들은 2016년 15분에 불과한 점심시간, 제대로 된 화장실조차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항의하며 투쟁해 식사시간 30분 보장, 휴게실 설치, 구청인가 운행횟수 준수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합의사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조합원들은 금천구청 앞에서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한남상운지회 조합원들은 꿀잠 리모델링을 할 때도 열심히 일했다"며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마을버스 동지들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싶어 초대했다"고 말했다. 한남상운지회 조합원 정윤호씨는 "오늘로 595일째 투쟁하고 있다"며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꿀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맙다"고 했다. 조합원 김태경씨는 "잘 먹고 간다"는 감사인사를 전했다.

김소연 상임이사를 비롯한 꿀잠 식구들이 주방에서 밥 준비하느라 바쁘다.<정기훈 기자>


꿀잠에서 꿀잠 자고 간 1천500여명
최연소 숙박객은 중3 청소년 활동가


이달 19일 개소 1주년을 맞는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이 쉼터와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꿀잠 방문객 현황과 각종 꿀잠 이용후기들이 이를 증명한다.

꿀잠에 따르면 개소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꿀잠에서 숙박한 인원은 1천515명이다. 하루 4.1명꼴로 꿀잠을 활용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전시·문화·교육공간 이용자는 1천529명, 기타공간 이용자는 369명이다.

김소연 운영위원장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오긴 했지만 의외로 학생들도 온다"고 귀띔했다. 1~2주씩 꿀잠에 묵으며 서울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투쟁현장에 연대하고 돌아가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식당 한쪽에 놓인 패널에는 "저도 꿀잠처럼 누군가를 따스히(따뜻이)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마음이 하나둘 모여 만들어진 꿀잠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다"는 대학생들의 정감 어린 후기들이 빼곡했다.

최연소 숙박객은 15세 중학생이다. 지난해 "꿀잠에서 자려면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되냐"는 앳된 목소리의 문의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단다. 부산 청소년 활동가인 이 학생은 서울 행사 참여차 올라오기 전에 꿀잠 숙박을 문의했다. "혼자 숙박업소에 갈 순 없어 전화했다"는 학생은 어머니 동의를 받고 꿀잠에 하룻밤을 묵고 돌아갔다. "공짜로 묵는 건 예의가 아니다"며 1만원이 담긴 편지봉투를 후원함에 넣고 갔다고.

박행란씨가 파를 다듬으며 요리 철학을 밝히고 있다. 번거로워도 화학조미료는 쓰지 않는단다. 요리 자체를 즐겨하진 않는다. 손이 커 뭐든 만들어 이사람 저사람한테 다 퍼주던 어머님 영향이라고 했다. 이날 만든 겉절이가 인기였다.<정기훈 기자>


매일 파인텍 고공농성자 저녁도시락 만드는 꿀잠

최다 이용객은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들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높이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홍기탁·박준호 지회 조합원과 함께 이날로 265일째 '지상농성'을 하고 있다. 매일 꿀잠에 들러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고, 10리터·20리터 물통에 물을 받아 간다. 10리터짜리는 굴뚝으로 올려 보낸다. 살인적 폭염에 지친 농성자들을 위한 간이 목욕물이다.

이날 오전 물통 세 개와 빨랫감을 들고 온 차광호 지회장은 "꿀잠 최대 수혜자는 파인텍"이라고 고마워했다.

"꿀잠이 없었으면 지금껏 농성을 유지하지 못했을 걸요."

차 지회장은 "먹고 씻고 세탁만 하는 게 아니라 꿀잠에서 정신적인 위로도 받는다"며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고 도와주는 꿀잠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꿀잠은 올해부터 매주 월~목, 토요일에 파인텍 고공농성자들을 위한 저녁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말이 쉽지, 거의 매일 도시락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박행란씨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인 박씨는 올해 3월부터 꿀잠에 상근 중이다. 청소부터 음식 만들기까지 꿀잠 구석구석 박씨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도시락 반찬 메뉴 정하는 게 제일 힘들다"는 박씨는 "음식 잘하는 언니들한테 전화해서 '반찬 뭐가 맛있냐, 어떻게 만드냐' 물어본다"고 말했다. 농성자들에게 매일 같은 반찬을 먹이는 게 싫어서다.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다. "요리를 잘 못한다"며 겸손해했지만 박씨가 5분 만에 쓱쓱 무쳐 만든 겉절이 맛은 일품이었다.

파인텍지회 굴뚝농성 지킴이 조정기씨가 '꿀잠' 이용 후기를 전하며 웃고 있다. 호텔이라고 평했다.<정기훈 기자>


쉼터 기능 충실했던 꿀잠 1년
미조직 비정규직과 다양한 사업 하고 싶다


조현철 이사장은 "꿀잠 문을 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됐다"며 웃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노동 분야에 빠른 변화가 생기자 문득 '꿀잠이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섣부른 생각이었다. 정권교체 후에도 비정규직·불법파견·해고·차별 같은 노동현안 해결이 더디기만 한 탓이다. 외려 꿀잠의 책임감이 커졌다.

조 이사장은 "꿀잠이 첫해 치고 정말 잘했다"며 "운영진이나 이용자 모두 꿀잠을 '누구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2년차에 재정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않을까 싶다"며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개소 후에도 한동안 일반 세입자 임대를 유지했던 2·3층은 최근 꿀잠 공간이 됐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교육센터가 2층 세입자가 됐고, 3층은 여성전용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 김소연 운영위원장은 "3층 리모델링까지 마무리되면 쉼터 기능은 거의 안착됐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당초 목표했던 비정규직 투쟁의 베이스캠프 역할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손 부족이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상근자 두 명으로는 기본적인 쉼터 운영도 벅찰 지경이다. 조만간 상근인력을 충원해 애초 계획했던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공연이나 영화상영·교육사업·의료연대사업을 활발하게 해 보는 게 꿀잠 2년차 목표다.

세상 어디에도 없던,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와 연대공간을 만들자는 꿀잠의 도전은 각 지역으로 전파되고 있다. 실제 부산지역 종교단체가 "부산에도 비정규직 쉼터를 만들고 싶다"며 꿀잠을 방문해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꿀잠 관계자는 "3층짜리 집을 매입해 공간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꿀잠에서 만난 파인텍지회 조합원 조정기씨는 "전국 곳곳에 제2·제3의 꿀잠이 생겨나길 바란다"며 "노동자들이 마음 편하게 와서 쉴 수 있는 공간, 연대 공간이 많아지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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