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한국은 독일 경제학자가 말했듯이 경제성장에 있어 하나의 기적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은 경제대국으로 면모를 갖춘다는 뜻이죠."

ILO 선임자문관 팀 드 메이어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명함'에 비유했다. 국제무대에서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나라로서의 정치적·경제적 신뢰가 담긴 명함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ILO 핵심협약 비준은 (협약 내용을) 100% 준수하고 있다는 인증서가 아니다"며 "ILO 핵심협약에 대한 명시적이고 정치적인 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뿐 아니라 사회적 대화 뒷받침돼야"

노사발전재단(사무총장 이정식)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ILO 핵심협약과 사회통합'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정식 사무총장은 "재단이 8월 발족한 국제노동기준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공개하고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고자 토론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기조발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온 팀 드 메이어 ILO 선임자문관이 맡았다. 그는 1시간 가까운 발제시간 대부분을 ILO 핵심협약 비준 의미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국내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이 곧 노동관계법령 전면 개편을 의미하는 것인 양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듯했다.

"핵심협약 비준은 협약에 명시된 의무를 지키겠다는 정치적 선언입니다. 핵심협약을 준수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관련 법률이나 제도·관행을 가지고 오겠다는 것이죠.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도 안될 수 있어요. 사회적 대화 같은 경로를 통해 노력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ILO가 타임라인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건 아니에요.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몫이니까요."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29호·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핵심협약 8개를 모두 비준하면 3~5년마다 ILO에 정기적인 보고서를 내고 협약 이행 여부에 관한 감독을 받게 된다. ILO는 협약권고전문가위원회를 꾸려 이를 검토하고 협약 준수를 '권고'하거나 '직접요청' 등의 조치를 한다. 정부가 핵심협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노사단체가 ILO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협약 비준 과정이 노사관계를 고도화하는 길"

기조발제 해설을 맡은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가 법 개정 사항에 집중되고 있지만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형식적 의미에 그치기보다는 비준을 통해 노동환경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대화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기조발제에 나선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준비하는 사회적 대화 과정과 국회에서 비준안 처리 과정, 비준 이후 ILO의 검증을 받고 바뀐 법·제도에 노사정이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노사관계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소모적 갈등을 반복하는 파편화한 기업별 노사관계가 바람직한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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