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전태일동상은 좌대도 없이 그냥 다리 위 길가에 서 있는데요. 현장에 가 보면 오토바이든 뭐든 잔뜩 서 있고, 청소를 해도 뒤에는 항상 종이나 담배꽁초가 날립니다. 우리 삶의 현장 속, 특히 평화시장과 동대문시장 사이에 사는 봉제노동자와 관련한 자영업자들 생활 속에 그대로 있는 거지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전태일동상의 특징을 설명하자, 9명의 수강생이 이 이사장이 가리키는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엔 좌대도 없이 상반신만 있는 전태일동상이 있었다.

전태일재단이 ‘전태일길 따라걷기 노동인권 해설사 3기 양성교육’을 개강한 지난 5일 수업 풍경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 2층에서 개강한 3기 양성교육 첫 수업을 참여자들과 함께 수강했다. 수업에 참여한 조근희씨는 “노동은 우리 사회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교육으로 사회문제에 조금 더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해설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2017년 처음 시작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서울시내 중·고등학생을 비롯해 전태일재단에 교육을 신청하는 여러 단체나 개인에게 전태일정신·노동인권 관련 교육을 할 수 있다. 3기 양성교육은 이날부터 28일까지 4주간 매주 2회(화·목요일), 회당 4시간 동안 이어진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 관련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공급이 못 따라가는 현실”이라며 “서울시교육청과 연계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체험교육을 하는 프로그램까지 생기면서 도저히 재단의 몇 명 안 되는 활동가만으로는 교육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양성교육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해설사를 양성하는 동시에, 양성교육 참여자들과도 전태일정신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양성교육 참가자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

이번 3기 양성교육에는 조씨를 포함해 10여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이날 첫 강의에 참여한 9명 수강생은 20대 청년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60대까지 다양했다. 디자이너, 노동단체 전직 활동가, 출판사 대표 등 직업도 각양각색이었다. 오래전 전태일재단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서 수강신청을 했다는 20대 디자이너, 창신동에 살면서 마을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성교육 소식을 접하고 참여했다는 40대 연극 연출가도 있었다.

두 살배기 아이를 품에 안은 이가 눈에 띄었다. “세 아이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30대 초반 김아무개씨는 “종로구 창신동에 살면서 도시재생 해설사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전태일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설명하게 됐다”며 “이분을 더 알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도 좋은 교육을 미리 듣게 될 것 같다”며 “양성교육을 마치면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은 내용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니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빙그레 웃었다.

노동운동 활동가들도 참여했다. 초대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으로 활동했던 김태현씨가 대표적이다. 민주노총에서 정년을 맞은 첫 활동가이기도 한 김씨는 “지난해 말 정년퇴임을 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 신청했다”며 “저는 연구를 했는데, 해설은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 주려면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호씨는 1기 양성교육 때 강의를 듣다가 유급(?)돼서 3기때 다시 신청했다. 이씨는 출판사 레디앙 공동대표다. 그는 “퇴학생이자 복학생인 셈”이라며 “젊은 친구들에게 전태일정신을 전달해 주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서 왔는데, 김태현씨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수호 이사장은 김씨와 이씨에 대해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제 친구들”이라며 “전태일을 잘 아는 분들인데 다시 한 번 전태일을 마음에 불러 보자는 생각으로 와 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 최나영 기자

“수료하면 재단에서 전태일기념관까지 걸으며 해설”

수강생들은 강의 쉬는시간에 이숙희 전태일재단 교육위원장에게 질문공세를 했다. 8번의 강의를 듣고 나면 수료생들이 전태일 해설사로 활동하게 되는 만큼 해설사와 관련한 질문이 많았다. 이숙희 교육위원장은 “해설사 활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되며, 참가자들을 데리고 전태일재단과 전태일기념관 사이 거리를 걸으며 해설을 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할 땐 특히 안전에 유의해야 하는 만큼 강의가 모두 끝난 뒤엔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게 따로 시간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교육 강의에는 해설사가 언어 사용에 조심해야 할 것을 배우는 ‘성인지 교육’ 시간이나 학생들에게 어떻게 강의할지 발표하고 직접 선보이는 ‘시연’ 시간도 들어가 있다.

전태일재단은 지난해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중·고교 30학급 900여명이 참여하는 ‘노동인권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올해도 상반기 30학급, 하반기 30학급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계획하며 서울시교육청 사업 응모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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