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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기본협약 비준, 정부나 노동운동이나 참 답답하다

기사승인 2019.03.18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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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를 2년 앞둔 시점이었다. 여기저기서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다. 100주년 총회를 계기로 한국도 ILO 기본협약 87호·98호 등을 비준하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비준을 약속했고 장담했다. 노동운동은 비준을 촉구하는 사업계획을 짰다.

그러고서 해가 두 번 바뀌었다. 총회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6월이니까, 겨우 세 달 남았다. 그런데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는 진척이 없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는 막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는 모양새도 아니고, 노동운동의 대응도 한가롭기만 하다. 이 상태로는 이번에도 헛방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한국이 ILO에 가입한 1991년 이후 28년 동안 풀지 못한 숙원사업이 또 물거품 되는 것이다.

기본협약 비준이 무산되면 그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한다. 난관에 봉착한 첫째 원인은 사용자단체에 있다. 그들은 기본협약 비준에 반대한다.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더라도 맨입으로는 해 줄 수 없다는 의도다. 경사노위 논의가 벽에 부딪힌 이유다. 이후로도 경사노위 합의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무산되면, 모든 책임을 사용자단체에 떠넘기며 비난하면 다 되는 것일까.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원래 그런 입장이다. 그 난관을 운동으로 풀어 가는 게 노동운동이고 정치로 풀어 가는 게 청와대인데, 노동운동과 청와대는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청와대에 묻는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공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의 남은 기간 정부와 노동계 관계를 규정하는 시금석 중 하나다. 비준이 무산되면 정부와 노동계 관계는 더더욱 불편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에서는 한국이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한·EU FTA 분쟁 단계로 넘어가는 전문가패널에 회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역 분쟁 소지가 될 수 있다.

노사 사이에 입장을 달리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지난 시기에 취했던 정부·정치권의 태도를 돌이켜 본다. “언제까지 합의해라, 그렇지 않으면 정부 또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 최근까지의 일관된 흐름이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서도 탄력근로제 확대에서도 그랬다. 노동에 불리한 사안이 있을 때는 특히 심했다.

왜 ILO 기본협약 비준에는 그 방식을 꺼내지 않는가. '선 정부 비준'이냐 '선 국회 입법'이냐에 관해 따로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대통령 선 비준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매일노동뉴스 윤효원 칼럼 <노동과 정치>에 충분히 설명돼 있다. 대통령이 국제협약을 먼저 비준·체결한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노무현 정부 한미 FTA가 그랬고 문재인 정부 판문점선언도 그랬다. 대통령이 먼저 도장 찍었다. 이명박 정부도 ILO 협약 47호 주 40시간 협약 등 4개 협약을 그렇게 했다. 동일한 ILO 협약인데, 87호와 98호 등은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고서 책임을 노사에만 돌리려 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3월 말까지 경사노위 합의가 없으면, 문재인 대통령은 먼저 비준해야 한다. 국회 동의와 입법은 차후로 넘겨도 된다. 그렇게 비준한 뒤에 대통령이 ILO 100주년 총회에 참석해 연설한다면, 한국 노사정 관계를 전략적으로 한 단계 진전시킬 것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이 무산된다면 노동운동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협약 98호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이다. 노조 결성과 단체교섭이 여전히 어려운 노동 현실에서 꼭 필요한 조항이다. 87호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이다. 조항을 다 쓰면 지면이 모자라 노동부가 소개하는 주요 내용만 옮긴다. 꾹꾹 씹어 읽으며 현실에 적용해 보라.

“노동자와 사용자는 각자 이익을 보호·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떤 차별도 없이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자유로이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에 대해서 결정하고 그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갖는다.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합법적 행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어떤 간섭도 중단해야 한다.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돼서는 안 된다.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이들 단체와 동일한 권리 및 보장을 받는 연합단체와 총연합단체를 설립하고 이에 가입할 권리를 갖는다. 동 협약에 의해 이들 단체들은 국제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에 가입할 권리를 갖는다. 위 모든 단체들의 법인격 취득은 제한적 조건들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협약에서 규정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서 노동자 및 사용자 그리고 그 단체는 다른 국내법령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법령과 그 법령의 적용으로 인해 협약에 규정한 보장 내용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

자, 어떤가? 중요성을 부연해 설명하지는 않겠다. 노동운동은 이 협약 비준을 28년째 매달려 왔다. 그런데 왜?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한 기회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이리 한가한가. ILO 100주년 총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노동운동은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투쟁이든 교섭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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