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KB국민은행에서 일하다 저임금직군(L0)으로 퇴직한 노동자들이 제기한 퇴직소득세 경정청구를 잇따라 인용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사직원을 제출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공백기간 없이 계속 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과 일부 세무서는 정규직 전환을 전후해 근무기간의 ‘단절’이 발생했다고 봤다. 그에 따라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퇴직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했다. 법원의 연이은 판결이 저임금직군의 온전한 경력 인정을 요구하는 노동계에 법리적 뒷받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차 집단 퇴사자들의 퇴직소득세 경정청구에도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

비정규직 경력 불인정으로 과다 원천징수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3행정부(재판장 문용선)는 이달 초 평택세무서가 A씨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소득세 경정청구 기각처분취소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02년 7월 KB국민은행에 계약직 사무직원 입사했다. 2014년 1월 정규직이 됐다. 2013년 10월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와 은행측은 기존 4단계 직군(L1~L4)을 5단계(L0~L4)로 개편하기로 합의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신설한 L0 직군에 편제하기로 했다.

A씨를 포함한 여러 비정규직이 회사 요청으로 사직원을 제출하고 근로계약서를 새로 썼다. 그때까지 발생한 퇴직금도 정산받았다. L0직군 중 40여명의 노동자가 2015년 6월 희망퇴직을 했다. 30개월치 특별퇴직금과 취업지원금을 받았다. 문제는 KB국민은행이 L0직군의 총 근무기간을 정규직 전환 이후로 잡고 퇴직소득세를 원천징수하면서 발생했다.

퇴직소득세는 퇴직금에서 근속연수에 따른 공제를 뺀 퇴직소득을 근속연수로 나눈 뒤 12개월을 곱해 나온 환산퇴직급여를 기준으로 산출한다. 근속연수가 길수록 환산퇴직급여는 적어진다. 40여명의 퇴직자들은 회사가 L0직군 전환 전의 근속기간을 계상하지 않으면서 퇴직소득세가 과도하게 징수됐다며 각 세무서에 경정을 청구했다. 이 중 절반이 받아들여졌다.

나머지 세무서는 이를 기각했다. A씨를 비롯한 8명의 노동자가 주소지 관할 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모두 1심에서 승소했다. 8곳의 지역 세무서는 항소했는데, 서울고법에서 처음으로 2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L0직군으로 전환하면서 퇴직금 정산 및 신규채용 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이는 근로형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절차에 불과하다”며 “그로 인해 원고와 국민은행 간의 근로관계가 실질적으로 단절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저임금직군 차별해소 목소리 커질 듯

각 세무서 소송을 대리한 정부법무공단은 당초 2심 재판 결과에 승복할 뜻을 밝혔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를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부는 대법원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7년 1월 희망퇴직한 L0직군 1천명에 대해서도 2014년 1월 이전 근속기간을 인정하지 않고 퇴직소득세를 원천징수했다.

세무서들은 재판 과정에서 “특별퇴직금의 경우 과거 근속기간에 대한 공로보상적인 성격은 없었고, 퇴직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목적”이라는 KB국민은행 입장을 참고의견으로 전달했지만 기각됐다.

지부 관계자는 “8개 지법 1심에서 모두 승소하고 2심 재판부도 동일한 판결을 내린 만큼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면 2017년 발생한 L0 희망퇴직자의 세무서별 경정청구가 인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부는 이달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L0직군에 대한 회사의 부당한 처우를 바로잡아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냈다. KB국민은행이 L0직군의 경력을 인정하지 않아 퇴직소득세는 물론 급여와 연차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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