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서울 마포구 성산동 야트막한 산 아래 동네 골목에 평상이 하나 있어 사람이 쉬어 간다. 이른 아침 골목청소 공공근로 나선 노인들이 노란색 조끼 입고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어제 보고도 할 얘기가 태산이다. 폐지 줍던 노인이 구루마 잠시 세워 두고 거기 앉아 숨을 고른다. 땀을 닦는다. 수업 마친 아이들이 집에 가다 말고 맨발로 올라 우당탕 뛰고 논다. 방과후교실 아이들이 딱지를 친다. 아랫집 무서운 아저씨가 거기 평상엔 없으니 층간소음 걱정 없다. 산책 나온 멍멍이도 풀쩍 뛰어올라 제집인 양 앉았다 간다. 택배 나르던 노동자가 큰 상자 잠시 내려 두고 전화한다. 10초는 머물렀나, 곧 바삐 움직인다. 다 큰 누나가 동생을 데리고 논다. 회사 갔다 돌아올 아빠를 기다리느라 골목 끝을 종종 살핀다. 어린이날에 새로 산 장난감 들고나온 아이가 자랑하느라 의기양양하다. 같이 놀자고 달려들던 친구가 그만 밟고 만다. 울고불고 한바탕 소동이 인다. 좀 컸다고 세상 초연한 표정을 한 교복 입은 학생 둘이 구석자리 차지하고 앉아 스마트폰을 본다. 늦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밥 먹어야지. 나 먼저 간다. 이따 보자. 온갖 잔소리와 협박조 다그침을 늘어놓느라 지친 아빠가 거기 털썩 앉아 앞산 나무를 물끄러미 살핀다. 어느새 뒤에서 달려든 아이가 등을 오른다. 아프다고 소리치면 더 재밌다고 달려든다. 해거름 녘 배달 오토바이 분주하게 그 앞을 달린다. 갓 구운 치킨 냄새를 맡고서야 허기를 느낀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짜증 낸다. 문득 엄마는 왜 안 오느냐고 따져 묻는다. 여태 잘 놀고는 울상이다. 아빠는 깊은 숨을 들이켜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는다. 어둔 밤, 헤어지지를 못해 가로등 아래 하나의 그림자를 새긴 연인이 평상을 찾는다. 집마다 불이 하나둘 꺼지고 이제야 골목에 평화가 깃드는가 싶더니 또 평상 앞이 시끌벅적. 모임 마친 사람들 집에 가려는데 따라나선 아이들이 술래를 뽑자 가위바위보 외치고 뛴다. 가자 가자 고! 내일 아침 일찍 회사 갈 걱정에 엄마 아빠 목소리가 점점 높다. 안녕, 잘 가라는 인사 열 번을 하고서야 평상 앞이 고요하다. 오가며, 쉬어 가며 사람들이 평상에 들고 난다. 거기 머물러 평상은 사람들의 일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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