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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좁은 휴게실에 감염위험까지, 평생 일해도 최저임금 받는 '병원의 유령'

기사승인 2019.08.13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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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왜 유령인지 아세요? 저렇게 시꺼먼 데 들어가 소리 없이 치우고 오잖아요”

이연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장이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에 들어가 누워 있는 모습. 다리를 뻗고 누울 공간이 없어 다리를 한쪽 벽면에 기대 올리고 있다.<최나영 기자>

문을 열자 화장실 한 칸보다 작은 공간이 나왔다. 걸레 빨던 곳을 개조해 만든 건물 모퉁이 세모진 장소.

“아니, 왜 이렇게 좁아요?” 기자 입에서 이런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혼자 쓰는 곳이어서…. 이 정도는….” 문 뒤에 있던 분회 조합원 A씨가 답했다. 이연순(66)씨가 A씨를 밀어내고 그곳에 들어갔다. 이씨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장이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50~60대다.

“이 정도는 무슨. 혼자 써도 다리는 뻗고 살아야지.”

이연순 분회장이 다리를 뻗자 공간이 꽉 찼다. 방 모양에 따라 구깃구깃 힘들게 누웠다. 다리 둘 공간이 없어 벽에 기대야 했다. 그의 위쪽 벽면으로 달린 선반 위에는 커피며 물이며 개인 용품이 빽빽이 쌓여 있었다.

지난 7일 새벽 5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에 있는 용역업체 청소노동자 휴게실 풍경이다. 건물 밖은 아직 깜깜했다. 병원 복도 끝 곳곳에 이런 휴게실이 눈에 잘 띄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다녀요”

A씨는 서울대병원 본관 입원실을 청소하는 오전팀 용역 노동자다. 밤새 쌓인 의료폐기물과 쓰레기를 치우고 복도 구석구석을 닦는다. 오전팀 청소노동자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그런데 A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 다수는 오전 5시가 되면 병원에 출근한다. 정시에 오면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없는 탓이다. A씨는 “한 시간 일찍 와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겨우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오전 8~9시, 오후 12~1시 등 두 시간은 쉬는 시간이다. 오후팀은 쉬는 시간 1시간을 포함해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일한다.

새벽에 만난 조합원들은 발과 손을 바삐 움직였다. 조합원 B씨는 비소독물실에 들어가 의료폐기물 수거함을 비우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비소독물실은 환의·환자분비물 등 오물을 버리는 곳이다. 마스크를 꼈는데도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B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솜·거즈·기저귀·여성위생용품 같은 의료폐기물을 흰 상자에 눌러 담은 뒤 테이핑을 했다. 오전 6시20분이 되자 의료폐기물 수거 담당 청소노동자가 복도에 테이핑된 흰 상자들을 발끝에서 머리까지의 높이로 쌓아 올려 카트에 끌고 갔다. “의료진들 오기 전에 어느 정도 준비(청소)해 놓으려면 오전 6시에 출근하면 늦어요. 봐요. 벌써 의료폐기물 상자를 가져가잖아요.” 의료폐기물을 한 차례 정리해 실어 보낸 B씨가 한숨을 돌렸다.

또 다른 층에 있는 조합원 C씨는 환자가 잠든 어두운 병실에 들어가 빠른 속도로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복도 주위에 놓인 주삿바늘·의료용 호스 등이 담긴 통도 비웠다. C씨는 뛰는 듯 걷는 듯 움직였다.

“우리가 왜 유령인지 아세요? 저래서 유령이에요. 시커먼 데에 소리 없이 들어가서 유령처럼 치우고 나오잖아요.”

이연순 분회장이 C씨를 보며 말했다. 또 다른 청소노동자는 비소독물실 의료폐기물을 치우면서 오물 버리는 곳에 고인 핏물을 빼냈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오물을 치우는 일도 청소노동자 몫이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가 지난 7일 새벽 입원실 복도를 밀대로 닦고 있다.<최나영 기자>

“의료진용 장갑·마스크 눈치껏 써야”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치우는 쓰레기는 일반 청소노동자들이 치우는 쓰레기와 다르다. 환자가 버린 쓰레기·오물이라서 병균이 묻어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항상 감염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조합원들은 의료진용으로 비치된 의료장갑과 마스크를 눈치껏 썼다. 병원 벽면 군데군데 달려 있는 마스크·장갑이 담긴 상자에는 ‘의료용’ 또는 ‘환자이송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합원 D씨는 “최근 안전문제가 언론을 통해 불거지자 병원측이 병원에 비치된 장갑은 써도 된다고 안내했다”면서도 “환경미화용이라고 적혀 있지 않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회에 따르면 용역업체는 노란색·빨간색 고무장갑과 흰색 면장갑을 일주일에 1개씩 지급한다. 매일 병실을 옮겨 다니며 청소하는 이들에겐 부족한 수량이다.

서울대병원 입원실 복도 벽면에 달린 일회용 장갑과 마스크. 장갑과 마스크가 담긴 상자에는 ‘의료인 전용’이라고 적혀 있다. 이연순 분회장은 “병원에 ‘환경미화용’이라고 적힌 장갑과 마스크가 담긴 상자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최나영 기자>

“환자 피·토사물까지 닦는데, 근무복 한 벌로 일주일 버텨”

오전 7시를 조금 지났을까, 본관 응급실에서 청소하는 조합원 E씨가 퇴근을 준비했다. 응급실 청소노동자는 3조2교대로 주주야야비비(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비번) 순으로 일한다. 주간팀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야간팀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근무한다. 전날은 E씨가 야간팀으로 일하는 날이었다.

E씨는 "응급실은 장비가 충분히 지급되지만 늘 감염위험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청소하는 구역의 감염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응급실 청소노동자는 의료폐기물뿐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 나오는 환자의 피나 변, 토사물까지 치운다. 그는 “우리가 청소하는 방의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야 그나마 대비할 수 있는데 의료진이 너무 바빠서 물어보기 힘들다”며 “의사나 간호사가 비닐옷 같은 것을 입으면 우리도 눈치껏 따라 입고 들어가 청소한다”고 털어놨다. E씨는 “온갖 잡동사니 균을 접하는데도 근무복이 많지 않아 일주일 내내 하나로 버틴다”며 “정규직처럼 매일 갈아입을 수 있어야 균을 옮기고 다니는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전 8시 쉬는 시간. 의료연대본부가 병원측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석 달 넘게 농성 중인 병원 본관 앞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한 차례 일을 끝낸 노동자들이 농성장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주삿바늘에 찔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주삿바늘은 별도의 통에 버리게 돼 있다. 그런데 의료진이 실수로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청소노동자가 그런 쓰레기를 눌러 담다 보면 주삿바늘에 찔리게 된다. 지금은 노동자들이 찔린 주삿바늘을 병원에 가져가면 용역업체가 치료·검진 같은 사후조치를 해 준다. 노조가 요구한 결과다.

노동자들은 그러나 “가볍게 찔리거나 주삿바늘을 못 찾으면 그냥 찬물로 씻고 말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조합원 서기화씨는 “2011년 청소 도중 에이즈 감염환자가 쓰던 주삿바늘에 찔린 적이 있다”며 “언론에 보도되면서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주삿바늘이 없는 공간에서 일하게 됐지만 이후 찾아온 우울증은 아직도 자비로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에서 올해 1~6월 청소노동자가 바늘에 찔린 사고는 노조가 확인한 건수만 6차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주삿바늘 찔림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가 지난 7일 새벽 서울대병원 본관 비소독물실에서 의료폐기물을 치우고 있다.<최나영 기자>

“10년 일했으면 최저임금보다 더 받아야 하지 않나요?”

청소노동자들은 근속과 상관없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근속을 인정받지 못해 1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 정규직들이 호봉제를 적용받고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 것과 대비된다.

“뭐, 떼돈을 벌러 온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10년 넘게 일했으면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아야 하지 않나요?”

“용돈 벌려고 나온 사람 아무도 없어요. 가장 역할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일이 힘들고 돈은 적지만 그래도 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임금 이야기가 나오자 조합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비정규 노동자로서 받는 차별의 서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합원 G씨는 “정규직 가운데 잘해 주는 사람이 많지만 일부 정규직은 간섭을 하고 고함을 치기도 한다”며 “원청 직원이 용역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것으로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조합원 H씨는 “정규직들이 무시하는 발언을 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그들 주위를 지나갈 때 의기소침해진다”며 “정규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어두운 새벽부터 병원 곳곳에서 '일과의 전쟁'을 치른 조합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사과와 과자 같은 간식을 나눠 먹었다. "아침식사"라고 했다. 오전 8시40분. 날은 밝았고 유령은 사라졌다. 환자와 방문객들은 병원 1층 로비를 여유 있게 거닐었다.

서울대병원 본관 입원실 앞 복도에 청소노동자들이 치워야 할 의료폐기물이 상자에 담겨 있다.<최나영 기자>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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