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으며 도로공사를 위한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이들과 공사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7다219072 등 판결). “도로공사가 허가 없이 근로자파견사업을 행하는 외주사업체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는 등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해 요금수납원을 사용했으므로 직접고용 간주 또는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불법으로 파견받아 사용한 사실, 사용으로 인한 이익은 수취하면서도 고용 관련 책임은 회피한 사실, 파견법에 따라 이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움직일 수 없는 진실임이 확인됐다.

이제 공사가 대법원 확정판결 취지와 파견법에 따라 부당해고된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은 후 열흘이 넘어가도록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이 공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공사는 지난 9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개별적 특성에 따른 파견 여부 판단” 때문에 소송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8월29일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으나 상고심 원고들과 1·2심 원고는 개별적 특성에 큰 차이가 있어, 사법부 최종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공사 주장은 대법원이 확정한 서울고등법원 사건에서 배척된 주장을 동어반복으로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사는 원고들 개개인별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입증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서울고법은 ① 기초적인 사실 대부분은 원고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인 점 ②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공사 영업소를 통일적으로 운영·관리할 필요성 ③ 공사 스스로 외주화 초기에는 통행료 수납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업체가 존재하지 않아 공사에 의해 교육이 실시되기도 했다고 인정하고 있는 점 ④ 공사는 그 후로도 계속 외주사업체 소속 근무자들의 업무수행에 관해 지휘·명령을 해 왔다고 봐야 하는 점 등을 근거로 공사의 주장을 배척했고(서울고법 2017. 2. 3. 선고 2015나2033531 판결 등 70~71쪽), 대법원은 서울고법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서울고법 원심 판결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공사 영업소는 통일적으로 운영·관리되고 있다. 근무관계가 다르지 않고, 다를 수도 없다.

같은 보도자료에서 공사는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청구가 병합돼 소송계속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 사건 외 나머지 사건은 근로자지위 및 임금차액을 함께 청구하고 있어 임금차액 부분 계속 진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공사 주장에 의하더라도 다툼이 없는, 그리고 명확한 근로자지위확인부터 먼저 해결하면 된다. 부당해고된 요금수납원들을 우선 원직에 복직시키고, 임금차액 부분은 차분히 정산하거나 소송으로 다투면 될 일이다. 공사의 주장은 부당해고를 계속하겠다는 변명, 그것도 주장 자체로 모순이고 전혀 설득력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같은 보도자료에서 공사는 기존 자회사 전환 동의자들의 형평성 유지를 주장하며 자회사 비동의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중단하면 비동의자들에게 과도한 특혜 부여 등 형평성 문제로 전환 동의자들의 반발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적반하장이다. 파견법을 위반한 불법파견을 시정해 달라는 것,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원직에 복직시켜 달라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마땅히 이행해야 할 법상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다.

공사는 일반 사기업이 아니라 공공기관 사용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공적 책무가 있다. 불법파견이 명확하고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는데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건 길고 긴 소송기간 동안 부당해고된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생계를 나 몰라라 하는 일이고, 그사이 소송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겠지만 이는 결국 국민 혈세로 부담할 일이지 내 돈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정답은 분명하다. 공사는 대법원 확정판결 취지와 파견법에 따라 부당해고된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을 지금 당장 직접고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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