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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골격계질환 추정의 원칙, 무용지물?] 골병 달고 사는 마트노동자도 적용 안 돼

기사승인 2019.10.2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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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상질병판정위 심의기간 그대로 … 산재 처리기간 단축효과 의문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7월 발생빈도가 높은 6대 근골격계질환 조사요령을 바꿨다. 직업성암에 이어 근골격계질환에도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공단이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근골격계질환을 산업재해로 승인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되레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과 업무상질병 판정제도상 문제점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해보상"이라는 추정의 원칙 도입취지가 무색하다.

노동자 산재입증 부담 덜어 주는 '추정의 원칙'
비정규직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


20일 공단과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에 따르면 7월1일부터 자주 발병하는 6대 근골격계질환에 추정의 원칙이 적용됐다. 추정의 원칙은 특정 직업군에서 자주 발생하는 질병은 신속한 산재보상을 위해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해 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반도체공장에서 일한 노동자가 희귀암에 걸리면 오랜 기간이 걸리는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 여부를 판단한다. 올해 5월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받은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 한혜경씨가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았다. 한씨는 2009년부터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했다. 2017년 9월 직업성암에 추정의 원칙이 도입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공단에 산재 재신청을 했고, 올해 5월30일 업무상질병을 인정받았다. 2009년 3월 첫 산재신청을 한 지 10년 만의 일이다.

근골격계질환은 지난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다룬 사건 1만6건 중 63.7%를 차지할 정도로 노동자에게 흔한 병이다.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근골격계질환은 보통 '디스크'로 불리는 경추간판탈출증(목)과 요추간판탈출증(허리)을 비롯해 회전근개파열(어깨)·반월상연골파열(무릎)·수군관증후군(손목)·상과염(팔꿈치) 등 6대 상병이다.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면 공단 현장조사만 수개월이 걸리는 근골격계질환 산재 심의기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해당 조건과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골병을 달고 사는 대표적인 직종인 마트 물품 진열·판매 노동자조차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흔한 근골격계질환인 요추간판탈출증을 보자. 공단은 10년 이상 일한 용접공·배관공과 버스·화물차·중장비 운전노동자, 5년 이상(연중 8개월 고용상태 유지) 돌봄노동자에 한해 척추병증 또는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2개 요추간판장애에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 현미향 울산산추련 사무국장은 "요추간판탈출증은 건설·제조·조선업종 노동자와 청소노동자, 진열·판매 노동자, 보육교사 50% 이상이 업무상질병 판정을 받는데, 추정의 원칙 적용 대상에서는 이들 모두가 특별한 이유 없이 제외됐다"고 비판했다.

10년 혹은 5년으로 정한 근무기간도 별다른 근거가 없다. 최근 돌봄노동자는 2년 만에 근골격계질환이 발병해도 산재로 인정되는 추세인데도 추정의 원칙은 5년 이상 근무자에게만 적용된다. 공단은 특히 근무기간을 산정할 때 4대 보험 가입내역을 기준으로 삼는다.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은 아예 추정의 원칙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업무상질병판정위 병목현상 방치하면
산재심의 고속도로 깔아도 무용지물"


더 큰 문제는 업무상질병판정위 병목현상이다. 근골격계질환에 추정의 원칙을 도입해 현장조사가 생략되더라도 업무상질병판정위 심의는 거쳐야 한다. 업무상질병판정위 법정 심의기간은 20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공단 업무상질병 처리기간은 평균 166.8일이다. 근골격계질환은 산재 신청 후 결정 통보까지 평균 108.7일이 걸렸다. 2016년(76.5일)보다 32.2일이나 길어졌다.

노동자들이 너무 아파 산재를 신청했는데, 석 달이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복잡한 산재신청을 지레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이 대표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골격계질환에도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는데, 업무상질병판정위 심의가 오래 걸리면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관계자는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기 전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사건들이 현재 업무상질병판정위에서 심의를 받는 중"이라며 "근골격계질환에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 사례는 올해 연말께나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에 대기 중인 사건이 너무 많아 근골격계질환에 추정의 원칙을 적용했음에도 산재 심의를 못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 근골격계질환은 업무상질병판정위를 거치지 않고 공단에서 곧바로 산재 여부를 결정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7조(판정위원회의 심의에서 제외되는 질병)에 추정의 원칙을 충족한 질병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추정의 원칙을 충족한 경우 공단 자문의가 승인하거나 업무상질병판정위에 간이심의회의를 두고 별도로 처리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업무상질병판정위에서 다루는 사건이 크게 감소하면서 전체적으로 업무상질병 산재처리 기간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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