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광주 소재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기광산업 2공장 용접노동자 정명식씨는 지난해 말 양쪽 무릎관절 수술을 받았다. 20년간 용접과 그라인더 작업을 하면서 무릎관절이 닳아 버렸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올해 7월 복귀한 정씨를 회사는 2공장이 아닌 1공장으로 인사발령했다. 전환배치 후 기본급 삭감, 연월차 축소 등 불이익이 이어졌다. 다른 공장, 새로운 업무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정씨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2016년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11조의2(불이익 처우의 금지)에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에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반한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는다. 하지만 정씨는 근로감독관에게서 "우리는 조사권한이 없다"는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다. 정씨는 최근 "2공장으로 다시 보내 달라"는 요구를 회사가 재차 거부하자 결국 사표를 냈다.

사업주 산재보험법 위반 심각한데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없어 … 경찰서 가세요"


산재보험급여를 신청한 노동자의 불이익 처분을 금지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2016년 12월 시행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를 예방하고 감독할 정부부처는 없는 상태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관련 법령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노동자들은 2차·3차 피해를 입고 있다.

5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산재불이익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관할 고용노동지청을 찾았을 때 "노동부 업무가 아니다"며 진정서·고발장 접수를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 현대성우메탈지회 조합원 김아무개씨는 올해 2월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산재신청 후 업무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겪고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에 문의했지만 "우리 업무가 아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명식씨를 도왔던 정석 노조 광주전남지부 기광산업지회장은 "산재보험법 위반은 당연히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조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노동부는 경찰 업무라고 얘기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찰이 어떻게 산재보험법 위반을 조사할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동계 "노동부 직무유기에 산재노동자 2차 피해"

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의 직무는 행정규칙인 근로감독관집무규정과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이뤄진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감독·조사하는 노동관계법령에는 산재보험법이 포함되지 않는다. 산업안전감독관이 집행하는 업무에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진폐예방법)만 규정돼 있다.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사법경찰직무법)에는 노동관계법에서 산재보험법을 제외했다.

이 때문에 산재보험법 위반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구분되고, 경찰이 사건을 조사·처리한다. 하지만 산재노동자가 경찰에 직접 진정하거나 고소·고발하더라도 경찰은 다시 노동부에 불이익 처분이 맞는지,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문서를 보내고 회신을 받는다. 결국 노동부가 담당할 업무라는 얘기다.

박세민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회사가 업무배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산재신청 노동자들을 괴롭히면서 2차·3차 가해를 하는 일이 잦아 산재보험법까지 개정됐다"며 "사업주들의 산재보험법 위반 혐의를 빠르게 조사·감독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고치면 될 일인데, 노동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노조와 공동기자회견을 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노동부가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 관련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며 "즉각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개정하고, 법 위반 사업주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집무규정 개정은 검찰과도 협의해야 할 문제"라며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우선 해당 부서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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